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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Apr 18. 2016

매뉴얼에 쓰여 있는 감각

무인양품 스피커라는 묘한 히트상품

무인양품 벽걸이 블루투스 스피커. 예쁘다. 예쁘긴 하다.


무인양품 스피커에는 묘한 구석이 있다. 흔히 스피커의 본질은 소리라고 여겨지는데 무인양품 스피커의 소리가 좋을 거라 기대하며 이 물건을 사는 사람은 없다. 즉 무인양품 스피커는 성능은 별로지만 디자인이 좋아서 일종의 상징성을 갖게 됐다. 그렇다면 스펙이 나쁜 기계가 어떻게 상징성을 가질 수 있을까? 여기 답하려면 무인양품이라는 회사의 특수성을 볼 필요가 있다.


무인양품은 지난번의 다이슨과는 완전히 다르다. 다이슨이 제임스 다이슨이라는 독선적인 천재의 창조물인 반면 무인양품은 철저히 시스템의 산물이다. 다이슨이 강력한 중앙집권제라면 무인양품은 기묘한 관료제다. 다이슨의 디자인이 기술과 섞여 있다면 무인양품의 디자인과 기술은 큰 상관이 없다. 다이슨의 라인업은 최대한 한 단순하지만 무인양품의 라인업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양하다. 


물건의 라인업과 기술은 두 회사의 기초적인 차이점이다. 다이슨의 뿌리는 딱 하나다. 전동 모터. 지금까지 출시된 다이슨 제품은 모두 전동 모터를 돌려 공기를 빨아들이거나 내뿜는다. 생각해보면 결국 다 그거다. 진공청소기는 빨아들이고 온풍기와 선풍기는 내뿜는다. 만들다 만 세탁기에도 모터를 돌리는 기술이 포함된다. 물론 다이슨은 먼지를 빨아들이고 바람을 내뿜는 디테일을 달리 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하지만 생산 단계에서의 근본 기술은 모터를 이용한 회전이라는 한 뿌리 안에 들어 있다.


무인양품은 어떨까? 이들이 핵심기술을 보유한 건 몇 개나 될까? 있긴 할까? 그러든 말든 무인양품은 7000개가 넘는 물건을 만든다. 일본의 무인양품 대형 매장은 그 많은 물건이 모여 만들어진 무인양품-이즘 이라는 종교의 신전이다. 내가 가본 후쿠오카 텐진 매장에는 5층 규모의 건물에 무인양품 아이용품, 식품, 옷, 자전거, 냉장고, 가구에 집까지 팔고 있었다. 그렇다고 무인양품이 싸냐면 그것도 아니다. <무인양품은 왜 싸지도 않은데 잘 팔리는가>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책도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무인양품 식품 중 가장 잘 팔리는 건 '소재를 살린 카레, 버터치킨'이다. 이른바 테크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 중 전자제품과 버터치킨이 한 브랜드에 소속되는 건 무인양품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 같다. 가전을 넘어 한 브랜드 안에서 의식주 전부를 채울 수 있는 대형 브랜드는 무인양품이 거의 유일하다. 이케아에는 옷이 없고 유니클로에는 옷만 있다. 


무인양품의 가정용 가전제품. 확실히 일관성이 있다.


무인양품 가전은 종류도 많다. 스피커와 커피 머신, 가습기에 냉장고까지 있다. 사정은 비슷하다. 성능이 뛰어난 것도, 값비싼 소재를 쓴 것도 아니며 유구한 전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블루투스 스피커만 봐도 성능은 민망한 수준이고 소재는 싸지 않은 정도이며 전통은 없다고 봐도 되고 디자인 역시 하던 것의 답습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줄여 말하면 무인양품 1/7000인 것이다. 


그런데 이 물건이 팔린다. 소비자는 이 물건의 단점을 알아도 산다. 이 스피커의 출력은 2W인데, 인터넷 오픈 마켓을 보면 같은 출력의 스피커는 약 2만원에 살 수 있다. 하지만 이 물건을 결국 살 사람들에게 출력 혹은 같은 출력의 더 싼 물건은 중요하지 않다. 이 물건의 후기는 '좀 비싸지만 샀어요' '성능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샀어요' 같은 것이 주를 이룬다. 질문은 반복된다. 음질 안 좋고 비싼 스피커가 왜 팔릴까? 


이유는 간단하다. 디자인이 좋아서. 하지만 디자인이 좋다는 말은 모호한 설명이다. 세상엔 무인양품 말고도 디자인이 좋은 물건이 많다. 그러므로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를 설명하려면 결국 이 기계의 모체인 무인양품이라는 회사에게로 눈을 돌려야 한다. 앞서 말했듯 무인양품은 콘셉트로 시작해 의식주 전체에 해당하는 물건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이한 회사다. 


무인양품에서 파는 물건의 공통점은 큰 변별력이 없다는 것이다. 무인양품 매장에 가보면 알 수 있다. 무인양품 수첩, 옷, 가구, 여행가방, 다 예쁘다. 동시에 다 꼭 무인양품에서 살 필요는 없다. 무인양품에만 있는 디자인은 있지만 무인양품에만 있는 물건은 사실 없다. 무인양품은 보통 물건과 다를 바 없는 물건에 무인양품 풍 디자인을 씌운다. 자전거에 미색을 칠하면 무인양품 자전거가 된다. 수수한 디자인의 옷을 구깃한 소재와 은은한 색으로 마무리하면 무인양품 옷이 된다. 마찬가지로 보통 물건에 '무인양품은 이렇다'는 콘셉트를 씌우면 무인양품이 된다. 


이거야말로 무인양품의 핵심 역량이다. 콘셉트의 무한한 확장. 항공사와 비슷하다. 항공 서비스라는 건 몇 시간 앉아 있으면 하늘을 날아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다. 본질적으론 차이가 없다. 기차와 달리 더 비싸진다고 더 빨라지는 게 아니니까 가격이 높아질수록 브랜드별 차이가 옅어진다. 그래서 항공 서비스는 가격이 높아질수록 동일한 효용 안에서 차이를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패션 디자이너에게 승무원 유니폼 디자인을 의뢰하거나 영화평론가에게 기내 영화 선정을 맡긴다. 침대같은 좌석을 제공하거나 아예 침대를 깔아주기도 한다. 서비스의 본질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무인양품의 스피커도 이 맥락 위에 있다. 출력이나 소재, 가격대 성능비는 어떤 물건을 고를 때 중요한 변수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변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이유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물건의 스펙 같은 건 상관 없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수도 있다. 관점에 따라 그것도 정답이다. 블루투스 스피커라면 음악만 나오면 되고, 방에 둘 거니까 크기가 적당하고 디자인이 예뻤으면 좋겠고, 가격도 적당하면 살 만하다는 결론을 낼 사람이 세상에는 무척 많다. 그런 사람들도 충분히 존중 받아야 할 소중한 소비자다.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읽은 결과물이다.  


무인양품이 계속 멋있게만 커온 건 아니다. 이들은 1980년 일본의 슈퍼마켓 체인인 세이유의 한 브랜드로 출발했다. '온 세상이 브랜드를 지향하던 시대에, 안티 세존(그룹사)으로서 노브랜드의 자사 상품을 개발한다는 발상에서 태어났'다. 처음에야 잘 됐지만 이들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를 쓴 마츠이 타다미츠가 회장으로 왔을 때는 사정이 별로였다. 그는 구조를 바꾸면서 성공 궤도로 진입했다고 썼다. 그 구조란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는 구조' '경험과 감을 축적하는 구조' '낭비를 철저히 줄이는 구조'다. 반면 <무인양품은 왜 싸지도 않은데 잘 팔리는가>의 저자 에가미 다카오는 '무인양품이 성공한 최대 요인을 '콘셉트'라고 확신한다.' 구조와 콘셉트, 누구 말이 맞는 걸까.


둘 다 맞다. 무인양품은 콘셉트라는 모호한 영역을 구조화하는 데 성공했다. 디자인 콘셉트라는 예민한 부분마저 구조화, 즉 매뉴얼화했다. 다이슨과 무인양품에서 찾을 수 있는 의외의 공통점은 보통 회사가 합치려 하지 않거나 합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영역을 붙였다는 것이다. 다이슨이 기술과 디자인을 합쳤다면 무인양품은 매뉴얼과 콘셉트를, 즉 구조와 감각을 합쳤다.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에 좋은 예가 나온다. 무인양품에는 '무지그램'이라는 매뉴얼이 있다. 2천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경영, 상품 개발, 매장 디스플레이와 접객에 이르는 모든 일의 노하우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뭐 그거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여기서 보여주는 매뉴얼의 일부가 마네킹에 옷을 입히는 방법이다. 센스와 경험이 필요한 일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을 한 페이지의 매뉴얼에 담았다고 한다. 다이슨처럼 연구개발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처럼 콘셉트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까지 친절하게 매뉴얼로 정리하는 회사도 거의 없다. 더구나 이 매뉴얼은 월 단위로 계속 경신된다. 무인양품의 온갖 콘셉트가 '무지그램'으로 정리된 후 그 매뉴얼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계속 신진대사를 진행시킨다.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 역시 그 매뉴얼의 정신에서 벗어나지 않는 물건이다.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의 모체가 된 벽걸이 CD 플레이어.


성공이라는 하나의 결과를 위한 해답 도출 과정의 수는 굉장히 많다. 축구의 공격수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골을 넣는다. 중요한 건 할 수 있는 한 많이 넣는 것이다. 다만 입증된 하나의 답을 무작정 따라할 수는 없다.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같은 걸 또 만들려면 무인양품과는 다른 방식으로 매력을 만들어내는 콘셉트부터 만들고 키워야 한다. 


아이콘이 되는 방법도 무한하다. 연주 실력과 시대의 밴드가 되는 것에 100%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기술적으로 별 건 아니지만 개념적으로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시대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에는 강력한 콘셉트와 연약한 스피커 유닛이 들어 있다. 이렇게 아이콘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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