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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Apr 10. 2016

진공청소기 모양을 한 에고

다이슨의 청소기와 제임스 다이슨

다이슨 진공청소기는 훌륭하다. 써보면 알 수 있다. 다이슨의 수식어는 이걸로 충분하다. 사실 여기까지만 쓰고 원고를 끝내도 되지만 기왕 적은 김에 계속 적어 본다.


방금 말을 조금 더 자세하게 쓰면 이렇다. 다이슨에는 테크 제품의 본령인 스스로만의 핵심 기술이 들어 있다. 디자인 완성도도 높다. 사용자 편의성에도 신경을 써서 사용하기 편하다. 브랜드 이미지도 뛰어나다. 물건을 이루는 모든 요소의 완성도가 골고루 높다. 다이슨에는 구형, 신형, 가정용, 핸디형 등의 라인업이 있지만 모든 물건이 거의 비슷한 지점으로 수렴한다.


우선 기술. 다이슨의 뿌리와도 같은 기술의 본질적 목적은 간단하다. 먼지를 더 잘 빨아들이는 것. 그를 구현시키기 위해 두 개의 아이디어가 붙는다. 흡입을 방해하는 먼지봉투를 없앤 것, 원심력을 일으켜 흡입력을 강화하는 고깔 모양 사이클론을 내장하는 것. 다이슨이 일본의 파트너와 처음 만든 G-포스부터 최근 나온 V6 플러피를 낸 지금까지 기술의 세부는 발전했지만 이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훌륭한 기술이다. 하지만 기술 좋은 회사 많다. 다이슨이 남달리 훌륭해지는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다이슨은 디자인도 좋다. 노랑이나 빨강 등의 대담한 색감, 투명한 먼지통,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힘줄처럼 솟은 굴곡. 따라하면 바로 티가 나는 다이슨 특유의 디테일이다. 잊혀지는 게 목표인 것처럼 생긴 보통 생활가전과는 다르다. 다이슨의 핸디형 청소기를 흰 벽에 세워두면 의도된 오브제 같다. 생활가전 특유의 희미한 느낌이 없다.


다이슨 디자인의 요소는 모두 기술과 무척 강하게 연결된다. 이 디자인은 기술을 반영하고 기술에게 봉사하며 기술을 설명해서 결과적으로 기술을 돋보이게 한다. 연결이라는 말보다는 기술과 디자인이 함께 맞물려 만들어진 것에 더 가깝다. 다이슨 청소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울퉁불퉁한 부분은 다이슨 기술의 핵심인 ‘사이클론’의 실루엣이다. 이 실루엣이 사용자의 궁금증을 자극시키고, 만약 사용자가 좀 더 알아본다면 그는 다이슨의 기술을 배우게 된다. 이 부분의 색은 늘 빨강이나 노랑처럼 눈에 잘 띈다. 핵심기술을 강조하는 화려한 디테일이다.


다이슨 디자인의 핵심은 투명한 먼지통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강조하는 흡입 성능을 증명하려면 성능을 보여주면 된다. 다이슨을 쓰면 먼지통 안에 먼지 뭉치가 쌓이는 걸 볼 수 있다. 내 공간이 이렇게 더러웠고 다이슨이 이 더러운 공간에서 얼마나 먼지를 잘 없애주는지 즉시 알려주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으으으' 하면서도 진공청소기를 쥔 손에 더 힘을 주게 된다.


교훈의 모습까지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때를 밀 때를 생각하면 된다. 때를 미는 이유 중 하나는 국수같은 때가 솟아오르는 걸 눈으로 봤을 때의 불쾌한 쾌감이다. 내 몸에 때가 붙어 있었다는 불쾌함과 이제는 더이상 내 몸에 때가 없다는 쾌감의 합은 단 것과 짠 것을 함께 먹을 때처럼 강렬하다. 다이슨의 먼지통은 그런 종류의 쾌감을 주는 디자인이며, 이 디자인은 다이슨의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 기술 덕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기술과 디자인이 하나의 목표 아래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이슨은 기술과 디자인뿐 아니라 사용자 편의성에도 신경을 쓴다. 예를 들어 다이슨의 신작 V6 플러피는 무게중심이 본체 쪽에 있다. 손에 들고 쓰는 것이어서 진공청소기를 들고 천장이나 책꽂이 위쪽의 먼지를 청소할 때도 있다. 이 청소기의 무게중심은 본체 쪽에 몰린 이유다. 보통 모터가 아래쪽에 있는 핸디형 청소기와는 달리 위쪽에 있는 먼지도 손쉽게 청소기 헤드를 들어올려 빨아들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기자를 대상으로 한 신제품 발표회에서 직접 들은 것이다. 다이슨의 프레젠테이션이 열리면 딱 봐도 엔지니어같은 영국의 본사 사람들이 직접 온다. 이 사람들은 장거리 출장을 상징하는 듯한 구겨진 셔츠를 입고 왠지 무기력하게(피곤하겠지) 이야기하지만 아무튼 이들은 실제로 제작에 참여한 실무자다. 전문 프레젠터보다 덜 유려할 수는 있어도 더 많은 걸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극동아시아까지 보내 발표를 시키는 것만 봐도 디자인과 융합한 기술이 맨 앞에 있는 회사란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이를 통해 다이슨만의 브랜드 이미지가 생긴다. 기술과 디자인이 모두 뛰어나고 사용자 편의성도 훌륭하지만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장난은 안 친다는 이미지가. 우리의 기술과 디자인이 곧 우리의 브랜드 이미지이며, 이걸로 충분하다는 도도한 자세다. '우리는 비싸다. 그럴 만 하니까'가 되는 건데, 비싼 물건이 팔리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납득이다. 다이슨은 스스로의 힘으로 남을 납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정공법과도 같은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알다시피 세상은 정공법이 잘 통하는 곳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이슨이 더 빛난다. 너저분한 세상에서 능력으로 성공했으니까.


너저분한 세상에서 능력으로 성공하기. 이건 다이슨을 만든 제임스 다이슨이 약 400페이지 분량의 자서전을 통해 전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분리시킬 수 없는 것처럼 다이슨과 제임스 다이슨도 분리시킬 수 없다. 다이슨의 장점인 기술과 디자인, 사용자 편의성과 브랜드 이미지는 모두 제임스 다이슨의 아주 강한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다. 


제임스 다이슨의 자서전인 <계속해서 실패하라>에는 다이슨의 능력과 노력뿐 아니라 엄청나게 괴팍한 성격과 아주 강한 고집도 잘 드러나 있다. 다이슨이 만든 건 단순히 더 좋은 물건이 아니었다. 진공청소기 업계에는 100여 년 동안 번성한 기존의 강자와 그로 인해 생긴 고정관념이 있었다. 다이슨이 정말 대단한 점은 좋은 물건을 만든 것뿐 아니라 사실상 홀몸으로 세상과 싸워서 끝내 이겼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잘 됐지만 다이슨 씨가 고생을 많이 한 건 사실이다. 최초의 사이클론 기술을 만들기 위해 5126번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진짜 고생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 다이슨은 10년 넘게 사람들을 설득하러 다녀야 했다. 그가 마침내 본인의 이름을 단 청소기를 만들기까지는 15년이 걸렸다. 그는 12년 동안 발명품을 개선하고 특허를 보존하기 위해 300만 파운드를 썼다. 내 생각이 옳았다는 걸 시장에 증명하는 데 15년이 걸린 것이다. 대단한 에고다. 보통 사람이 아니다.


성격도 보통이 아닌 것 같다. 그는 책 제목처럼 계속해서 실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온갖 사람들을 계속해서 험담한다. 자신의 기술을 무시하거나 막거나 비난하려는 업계의 구태의연한 사람들, 물건보다는 광고와 돈벌이에 더 관심이 있는 영국의 광고계와 금융계, 좋다고 말만 하면서 좋은 결과를 주지는 않는 미국인, 내 기술을 상용화하긴 했지만 개런티는 조금 주는 일본인, 비합리적인 특허 시스템, 그리고 근본적으로 멍청한 물건을 만들어서 잘도 팔아왔던 진공청소기 업계의 강자들. 다이슨은 이 사람들을 욕하려고 자서전 썼나 싶을 만큼 강하고 반복적으로 같은 메시지를 반복한다. 이 책의 원제는 <Against all odds>다.


이런 사람이 호락호락할 리 없다. 책의 곳곳에 다이슨이 싸우고 소송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이슨은 협상을 하다가 결과가 안 좋자 재킷도 안 들고 호텔 방을 나가버린다. 다이슨을 만들고 통신판매 회사와 접촉할 때 이야기가 잘 안 통하자 당신들이 파는 물건이 별로니까 내 청소기가 들어가야 하는 거라고 화를 낸다. 소송은 또 얼마나 많이 했는지 자서전에 소송 노하우를 소개할 정도다. 책에 쓰인 게 이 정도면 안 적힌 건 더 대단할 것이다. 그는 스스로 ‘나의 까다로움은 결국 나의 경쟁력이었다’고 표현한다. 이런 직장 동료 어떠십니까.


약속된 것도 없는 가능성 때문에 끝도 없이 돈을 쓰고 기술을 팔겠다며 전 세계를 돌고 맹렬히 소송을 하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역시 답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정체성이다. 그는 한창 본인의 기술이 안 팔리던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진공청소기가 매력적인 제품이고 누군가 알아볼 것이라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 덕분이었다.’ 내가 만든 것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믿음. 이런 게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이슨의 물건은 진공청소기와 선풍기 모양을 한 어느 천재의 에고일지도 모른다. 다이슨이 모든 부분에서 남다른 이유 역시 다이슨 본인이 제품에 관련해 모든 부분을 익혔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을 전공한 엔지니어다. 회사를 운영하면서는 광고와 생산과 마케팅 등 경영 전반 각 요소의 본질을 전부 습득했다. 모든 면에서 유기적으로 기능하는 물건을 만들려면 강력한 리더가 필요하다. 다이슨은 아주 독선적인 중앙집권제에서 만들어진 물건처럼 보인다. 어느 독특한 영국인이 삶을 걸고 대단한 내기를 했다. 길고 어려운 실패와 분노 끝에 그 독특한 영국인이 마침내 이겼다. 그 결과 만들어진 어떤 재능과 집념의 결실이 전 세계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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