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걸 내 칫솔이 안다면
가전업계의 가장 큰 양상 중 하나는 사물 인터넷이다. 인터넷에 연결되는 기계가 점점 많아질 거라는 뜻이다. 온갖 기계에 센서가 달려 유저의 행동을 데이터화하고 데이터화된 행동이 인터넷을 통해 기록되고 저장되며 패턴이 된다. 이 기술이 쓰일 곳은 사실상 무한대인데 지금은 건강 관련 기기에 많이 쓰인다. 덕분에 우리는 운동 기록을 저장하고 패턴을 분석하며 내 운동 기록을 SNS에 올려서 ‘좋아요’를 여섯 개쯤 받거나(좋아요의 수엔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멋지다~”는 답글을 받을 수도 있다. 기술은 우리를 조금씩 더 행복하게 해 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게 행복이라면.
사물 인터넷이 되는 기계가 점점 늘어날 거라는 게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랄-비는 블루투스 연결 기능을 갖춘 전동칫솔을 출시했다. 센서가 내 행동과 패턴을 기록한다는 기본 원리는 같다. 블루투스 기술을 통해 그 패턴을 내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다는 것도 같다. 그 패턴의 종류가 내 양치질이라는 사실이 포인트다. 스마트폰에 오랄-비 앱을 다운로드받은 후 이 칫솔과 연동시키면 칫솔질 데이터가 기록된다. 매일의 칫솔질 기록이 쌓일 때마다 결과를 알려준다. 칫솔이 내 양치질 패턴을 기억한다니.
이 칫솔을 보면서 기술은 인간을 어디까지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됐다. 아니, 이것보다 기술이 인간을 돕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칫솔질을 샅샅이 기록하는 칫솔과 함께 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의 칫솔질 데이터가 그렇게 기록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신경쓸 게 많은데 내 앱의 양치질 알람까지 신경써가며 살아야 하는 게 ‘스마트 라이프’일까? 이런 고민 자체가 나 역시 어느새 신기술에 이유 모를 반감을 느끼는 옛날 사람이 되고 있다는 뜻인 걸까? 내 연인이 내 스마트폰을 보다가 내 양치질 기록을 보고 칫솔질을 1분만 한다는 걸 보고 나와의 키스를 기피하면 어쩌지?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 칫솔을 사면 필사적으로 양치질을 해야 하는 걸까?
아무튼 이 칫솔의 발전은 요즘의 자동차를 비롯한 기계의 발전상과 궤를 함께 한다. 출력보다는 효율에,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에 방점이 찍힌다. ‘딥 클린’모드와 ‘혀 세정’모드를 포함한 6가지 칫솔질 모드에 따라 스마트폰을 한 손에 들고 양치질 매뉴얼을 보며 모범적인 칫솔질을 할 수 있다. 의사가 권장한 2분 칫솔질을 적절하게 마치면 별점 5개를 받는다. 이 모든 양치질 기록을 페이스북에 공유할 수도 있다. 내가 오늘 양치질을 2분 동안 세 번 해서 별점 14개를 받았는데 3구역은 조금 세게 했다는 사실을 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알릴 수도 있는 것이다. 기술은 우리를 상상도 못할 곳으로 데려가는 중이다.
남성지 <루엘>에 실렸던 원고를 조금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