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궁금하시다면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실제로 참전한 미군 출신 크리스 카일이 쓴 동명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전쟁을 직접 겪은 남자의 일인칭 시점 이라는 특수한 성격의 전쟁물이다. 전쟁은 어떤 관점을 취해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소재다. 그러므로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포함한 모든 전쟁물은 누가 어떤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 찬성과 반대와 긍정과 부정과 분노와 연민을 포함한 어떤 종류의 감정도 불러낼 수 있다. 나는 이 글 안에선 영화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영화를 보고 좀 더 궁금한 게 생긴다면 이런 책을 보면 된다 정도만 이야기하려 한다.
[워]는 진짜로 싸움에 뛰어든 병사의 마음을 말한다. 작가 세바스찬 융거는 미군이 큰 고생을 한 지역 중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의 고산지대에 주둔하는 보병소대와 목숨을 걸고 15개월 간 머무르며 전쟁터와 전사의 심리 상태를 관찰한 후 이 책을 썼다. 폭력은 동의할 수 없지만 박멸할 수도 없다. 손에 피를 묻히는 게 직업인 사람도 있으며, 그런 사람도 똑같이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전투라는 경험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워]는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크리스 카일 같은 사람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팔루자 리포트]는 크리스 카일을 전쟁터로 내몰고 방아쇠를 당기게 해서 적군의 생명을 빼앗고 본인의 정신을 좀먹은 그 전쟁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왜 미군이 라마디와 팔루자에 들어갔는지, 전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떤 지휘체계와 의사결정을 거쳐 조직의 맨 끝에 있는 해병 전투부대가 시가전을 벌이게 됐는지를 자세히 알려준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미시사라면 이 책은 거시사다. 왜 저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이 아주 만족스러울 것이다. 다만 [워]는 미군의 협조를 받아 취재했고 [팔루자 리포트]의 작가는 미군 출신이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둘 다 자신은 미국 혹은 미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책을 썼다고 했지만 미국의 시점에서 100%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묻어 있을 미국의 시점이 거슬린다면 서방세계에서 조롱을 담당하고 있는 영국인의 시점을 가져오면 된다. [전사의 시대]는 영국인 베테랑 종군기자 로버트 피스크의 칼럼집이다. 그는 결국 문명의 발상지인 중동 지방을 분쟁의 땅으로 만든 건 서구의 몇 강대국이라는 이야기를 끈질기게 반복한다. 제국의 오판 때문에 근본적인 불평등과 갈등이 생기고, 그로 인해 전쟁이 벌어지고, 그 중 하나로 팔루자라는 도시에서 시가전이 일어나서, 텍사스 출신의 튼튼하고 단순한 남자인 크리스 카일까지 이라크로 건너가 160명이 넘는 사람을 사살하며 ‘라마디의 악마’가 된 것이다. 21세기가 이렇게 복잡하다.
*크리스 카일의 160명 사살 기록은 공식 기록이다. 비공식 기록은 더 많다고 한다.
남성지 <루엘>에 실렸던 원고를 조금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