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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y 04. 2016

우주로 간 시계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의 영광


[마션]은 화성에 혼자 남게 된 과학자의 생존기다. 소설로 읽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감탄한 점은 꽤 많은 설정이 실제의 연구 결과라는 점, 그리고 그 결과들을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었다. 인류는 우주를 몰랐을 때 [스타쉽 트루퍼스]같은 우주 벌레 활극을 만들고 우주에 대해 지식을 쌓은 결과 [마션]처럼 현실적인 SF를 만들어냈다. 생각해보면 좀 감동적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확실히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마션]이 나오기까지의 실물세계는 꽤 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다. 큐리오시티와 디스커버리가 있었고 그 전에는 아폴로 프로젝트가 있었으며 그 전에는 제미니 프로젝트가 있었다. 비록 우주 개발이라는 게 냉전의 기싸움이었다 해도 인간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기계로 잘도 우주까지 다녀온 것이었다. 그 과정을 함께 한 물건 중에서는 우리같은 보통 사람도 돈을 좀 모으면 살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다.


스피드마스터는 스위스의 시계 회사 오메가에서 만든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다. 크로노그래프는 경과 시간을 측정하고 기록하는 기계식 시계의 기능을 말한다. 흔히 스톱워치라고 하는 그 기능 맞다. 왜 스톱워치라고 하지 않고 크로노그래프처럼 폼 잡는 말을 쓰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는데 물건이 비싸지다 보면 수식어도 달라져야 하는 게 모든 사치품 업계의 생리다.


크로노그래프는 거창한 이름이 어울리는 진지한 정밀 계측기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핸드폰 기본 시계에도 스톱워치 기능이 있으니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인간이 정밀한 단위의 경과 시간을 기록할 수 있는 기계를 휴대할 수 있게 된 건 50년도 안 된다. 기계식 시계의 발달 과정은 소형화, 오차 감소, 경과시간 측정, 달력, 종치기 정도로 세분화된다. 경과 시간을 측정하는 튼튼한 소형 기계는 엄연한 첨단 기술이었다.


스피드마스터가 NASA의 우주 탐험 시계로 선정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이 시계가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다큐멘터리다. 아폴로 전 세대인 머큐리 프로젝트 시대의 공식 시계는 우주선에 장착된 시계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우주가 버스 세 정거장도 아니고 거기까지 가는데 시계 하나라니 내가 보기에도 위험해 보인다. 그래서 NASA는 보조기구 개념으로 우주인에게 지급될 기계식 손목시계를 찾기 시작했다. 각종 테스트에 통과한 최후의 시계 하나가 우주인의 기계 중 하나로 쓰이는 것이었다.


시계 전문지 [크로노스] 2009년 7월호에는 이 프로젝트에서 시계 구매를 담당한 제임스 H. 레이건 씨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그 인터뷰에 따르면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위급 상황을 위한 일종의 백업 시스템이었다. 이걸 자체적으로 개발하기엔 너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애초부터 외부 업체들의 시계를 구매하려 했다고 한다. NASA의 엔지니어들이 '오롤까'같은 방식으로 스피드마스터를 골랐던 게 아니다. 레이건 씨 역시 NASA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는 곳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문 워치'를 선정하기 위해 휴스턴의 보석 가게에서 시계를 사갔다는 소문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레이건 씨는 후보를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시계 회사들의 크로노그래프 생산 라인을 확인하고 우주인들에게 손목시계 사용 경험을 물었다. 그때도 개인적으로 롤렉스, 브라이틀링, 오메가 등의 시계를 차고 나간 우주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정식으로 NASA 구매부를 통해 6~8개의 브랜드에게 테스트용 샘플을 확실한 용도는 아직 밝히지 않고 요청했다. 요청에 응한 브랜드는 4곳이었다. 해밀턴, 롤렉스, 론진 비트나우어(지금의 론진), 오메가.


테스트는 혹독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의 영문 위키피디아 항목에 나온 세부 요소를 보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 든다. 11개의 테스트 항목 중에는 71°C에서 48시간 버티고 93°C에서 30분 견디기, 95% 습도에서 250시간 테스트, 최소 8.8g 중력에서 최대 2000Hz의 진동 측정 등이 있었다. 웬만한 시계들이 떨어져나간다 해도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롤렉스는 습기 테스트에서 탈락하고 열 테스트에서는 바늘이 녹았고, 론진은 여러 차례 글라스가 녹았다는데 테스트가 저러면 당연한 것 아닐까 싶다. 해밀턴은 처음부터 회중시계를 보내와서 바로 제외되었다고 한다. 오메가는 저렇게 엄청난 테스트를 거치고도 살아남은 최후의 시계가 되었다. NASA는 오메가에게 화환을 보낸 건 아니었지만 정식으로 스피드마스터를 대량 구매하기 시작했다.


스피드마스터는 달 표면에 두 번째로 도착한 버즈 올드린의 시계로 알려져 있다. 첫발을 딛은 닐 암스트롱은 혹시나 해서 탐사선에 시계를 두고 나왔기 때문에 닐 뒤로 나온 버즈 올드린의 스피드마스터가 처음으로 달 표면을 겪은 손목시계다. 하지만 그 전에도 스피드마스터는 미국 최초의 우주 기록과 함께 했다. 1965년 6월 5일 미국은 자국 최초로 우주 유영에 성공했는데, 그 주인공인 에드 화이트는 스피드마스터를 차고 있었다.


 

에드 화이트의 스피드마스터. 우주로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나가던 시대.


기계식 시계의 강자들은 이런 식의 그리스 신화같은 이야기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누가 차고 어디 깊은 물 속에 갔고 누가 어디서 이걸 차고 뛰어내렸고 어디에 우리 시계를 매달아서 바닷속으로 내려보냈다는 등, 요약하면 '우리 시계가 이렇게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전통이 있다'는 주제다. 비싼 물건은 단순히 비싼 소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싼 물건을 산다는 행위 뒤에는 사람들의 납득과 동의가 필요하다. 납득과 동의를 하려면 브랜드 이미지나 인지도 혹은 중고 시세같은 변수가 많을 수록 좋다. 남자 물건의 튼튼함과 물건의 신화 역시 그 변수 중 하나다. 내가 달에 가기는커녕 추석 아니면 달도 안 보면서 살아도 튼튼한 시계에는 남자의 마음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다. 그러므로 질문이 남는다. 에피소드를 가진 시계가 많다면 그 중에서도 스피드마스터가 특별한 부분이 무엇일까?


오메가를 달로 보내기 위해 특별히 한 게 없다는 것이 스피드마스터의 가장 특별한 부분이다. 시계 회사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성능을 증명하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낸 주체가 사실은 시계 회사인 경우가 많다. 마케팅 이벤트 개념으로 극한 상황을 만들고 거기에 성공한 후 그 자료를 일반에 배포하는 것이다. 오메가의 경우는 완전히 반대다. 오메가는 NASA로부터의 정식 요청을 받기 전까지는 자기 시계가 어디 가는지, NASA가 이 시계로 뭘 하는지도 몰랐다. 고급 시계 업계에서 달에 갔다 왔다는 명찰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아주 귀한 트로피다. 그 타이틀을 얻기 위해 오메가가 한 것이라고는 아주 튼튼한 시계를 만든 것 뿐이다. 아주 튼튼한 시계를 만든 덕분에 스피드마스터는 여섯 번의 아폴로 미션에 참여했다.


스피드마스터는 1970년의 아폴로 13호 미션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폴로 13호 미션은 영화화된 것처럼 탐사선의 산소 탱크가 폭발하며 공포의 서바이벌 게임으로 변했다. 여기 타고 있던 잭 스와이거트는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했는데 그때 의지해야 하는 시간 계측기가 스피드마스터였다. 스와이거트의 시계가 시간을 정확히 표시한 덕분에 궤도 수정은 성공했고, 그런 인간의 기지와 기계의 안정성이 쌓여 아폴로 13호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NASA는 이때의 공을 인정해 오메가에게 '스누피 어워드'를 줬다. 우주 개발에 공헌한 업체와 개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오메가가 한 번씩 스누피 그림을 새긴 한정판 스피드마스터를 출시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발사 전의 잭 스와이거트. 그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지금도 희대의 명기인 오리지널 문 워치를 살 수 있다. 사양도 그때 그것과 비슷하고 이름도 프로페셔널 문 워치다. 그때 것과 비슷하다는 건 지금 것과는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 경향과 다른 차이점은 크게 셋이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 대신 옛날 손목시계에 쓰던 플렉시글라스를 썼다.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말고 수동 크로노그래프를 넣었다. 케이스 뒤를 유리로 처리해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쇠로 뒷면을 막았다. 다 각자의 이유와 장단점이 있다. 플렉시글라스는 경도가 약한 대신 충격을 받아도 금이 갈 뿐 산산조각나지는 않는다. 수동 크로노그래프는 오토매틱 모듈이 없는 개념이어서 기계 구조가 간단해지고 두께가 줄어든다. 시계 뒤를 유리로 처리하면 보기엔 좋지만 내구성이 약해질 일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 이건 프로페셔널 문 워치니까.


무엇보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멋진 시계다. 지금은 찾기 힘든 20세기 디자인 특유의 담백함이 살아 있다. 지름 42mm 케이스는 출시 당시 기준으로는 대형이었지만 지금은 적당하다. 다이얼과 베젤에 촘촘하게 새긴 눈금과 돔 형태로 조금 솟아오른 플렉시글라스도 귀여운 느낌이 난다. 시침과 분침 역시 요즘 오메가가 쓰는 브로드애로우 형태가 아닌 얇은 1자형이다. 이때는 시계가 비싸기 때문에 정교한 게 아니라 정교하기 때문에 비싼 물건이었다. 지금의 거의 모든 손목시계에서 드러나는 과잉이 덜한 것도 스피드마스터가 장신구이기 이전에 정밀 시간 계측기였기 때문이다. 만약 달에 갔다는 트로피가 없었다면 스피드마스터는 진작 단종되었을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중고로만 구할 수 있는 수많은 20세기의 날씬한 시계들처럼.


더이상은 사람이 달에 가지 않지만 오메가는 축제가 끝나도 음악을 끄지 않는 가게처럼 별의별 문워치 에디션을 계속 출시한다. 2015년에도 스누피 어워드 40주년 기념 한정판 스피드마스터가 나왔다. 현실이 하나인 것처럼 진짜도 하나 뿐이라서 정말 그때 그것과 똑같은 진짜 문워치는 지난 시대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문워치의 이야기만은 남아 있다.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의 한 자리는 오메가의 차지였고, 그 비결은 결국 튼튼하고 정밀한 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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