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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y 06. 2016

샘 스미스의 고통 묘사

고통 앞에서의 압도적인 무기력




살다 보면 마음에 드는 일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일일이 세 보면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런 말로 줄을 채우는 게 미안할 정도로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엔 마음이 약한 보통 사람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안타깝게도 우리는 고통스러워하는 것 말고는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노래 속의 주인공은 연인에게 배신당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사랑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가사는 ‘너와 나는 맹세했어/더 좋아지든 더 나빠지든’ 이란 말로 시작한다. 이 뒤에는 ‘함께할 거라고’ 같은 말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대신 가사는 바로 ‘난 네가 나를 실망시킬 거라고는 믿을 수 없었어’라는 말로 넘어간다. 논리적 비약이 있어도 우리는 이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도 차근차근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성을 잃었을 때 그러하듯.


주인공은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이 가사에는 ‘하지만’이 다섯 번이나 나온다. ‘네가 나를 실망시킬 줄은 몰랐지만/증거가 나를 아프게 해’ ‘이게 지나갔으면 좋겠지만/난 너를 아직 필요로 하는 걸 알아’ 처럼, 주인공은 기대가 무너진 현실을 빨리 극복하고 싶다. 하지만 나쁜 상황은 역시 벗어나기 힘들다. 강한 비바람처럼 감정이 정신을 앞뒤로 쥐고 흔들 때 어떻게 되는지는 이 노래를 듣는 우리도 모두 알고 있다. 그때의 무기력한 감정은 떠올리기만 해도 슬퍼지는 종류의 것이다. 


주인공은 화도 내 봤다. ‘넌 내가 미쳤다고 해/네가 한 짓을 내가 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네가 날 부를 때/나는 내가 네 단 하나뿐인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 한참 울고 난 후의 갑작스러운 침묵처럼 한 절이 여기서 끝나버린다. 배신당했고, 내 연인이 나만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할 수 있는 말이 ‘나도 그 사실을 알아’ 뿐이라는 사실은 정말 슬프다. 고통스러운 상황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상처받고 지친 마음이 움직이지도 낫지도 않는다는 것이. 


살다 보면 사랑을 잃거나 믿음이 깨져서 큰 아픔을 겪는다. 나도 뭘 하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과한 자책이 나쁜 건 알고 있다. 고통 때문에 자신에게 상처를 주면 고통을 헤쳐 나가야 할 자신의 힘을 스스로 꺾게 된다. 사실 나는 이런 글로 누군가의 자책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엔 힘 내라는 말을 들으면 더 힘이 빠지는 상황이 너무 많다. 다만 이건 어제 어딘가에서 읽은 이야기인데 꽤 좋았던 기억이 딱 하나라도 있으면 그 느낌을 다시 찾고 싶다는 게 삶의 동력이 된다고 한다. 이런 말을 보고 누군가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린다면 그것처럼 보람 있는 일도 없을 것 같다.



앱 매거진 <뷰티톡>에 연재하는 원고를 여기 옮겨 둡니다. 노래 가사를 빌어 말하는 일종의 연애 칼럼입니다. 어떤 형태의 지적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브런치에는 연재 시점의 2주 후인 매주 금요일에 원고가 올라갑니다. <뷰티톡>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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