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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y 07. 2016

어떻게 뇌가 유행이 되었을까


어떻게 우리는 뇌가 섹시하다는 말을 입에 올리고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즐거워질 수 있었을까? 왜 뇌일까? 지난 수 년간 우리는 뇌가 일상 대화, 혹은 유행의 반열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인터넷에서는 몇 개의 객관식 문제에 답하면 내 뇌 구조를 보여주는 심리 테스트가 인기를 끌었다. 2014년에는 ‘뇌가 섹시한 남자’를 줄인 ‘뇌섹남’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심리테스트의 시각적 인터페이스가 뇌 모양일 이유는 없다. 지적 매력이 있는 남자를 수식하는 말로 굳이 뇌를 쓸 필요 없이 ‘반짝남’ ‘똑똑남’ ‘기특남’ 같은 걸 만들 수도 있다. 방금 댄 말들이 좋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뇌섹남’에 비해 딱히 나쁜 것 같지도 않다. 아무튼 요즘 유행한 개념과 정말 뇌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뇌 관련 개념 유행이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다. 여자아이의 머릿속에 대한 이야기인 <인사이드 아웃>은 개봉 2개월 만에 6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딱 20년 전에 나온 클론 1집 ‘꿍따리 샤바라’의 랩 부분 가사와 다를 게 거의 없다.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고/좌절과 용기가 교차되고/만남과 이별을 나누면서/이렇게 우리는 살아가고/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마음먹은 대로 될 때도 있어/다 그런 거야 누구나/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니까’ 영화를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다. 간단한 이야기 구조는 훌륭한 대중 서사물의 특징 중 하나다. 


<인사이드 아웃>이 정말 뛰어난 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새로운 소재를 붙인 후 높은 완성도로 시각화시켰다는 점이다. 11살 여자아이의 감정이 생기는 과정이라는 이야기 구조에 심리학과 뇌과학 요소를 붙인 것이다. 어려웠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어떻게 감정이 하필 다섯 개의 캐릭터로 표현될까, 왜 네 개나 세 개, 혹은 일곱 개는 아닐까? 


이건 고민과 고증의 결과물이다. 다섯 개의 감정은 심리학자 폴 에크만의 연구와 흡사하다. 감독 피트 닥터가 피치포크에서 운영하는 웹진<더 디졸브>의 6월 23일자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이 외에도 <인사이드 아웃>의 크레디트 중에는 콜롬비아 대학의 마인드브레인 비해이버 인스티튜트도 올라와 있다. 7월 3일 <뉴욕 타임즈>에는 피트 닥터에게 자문을 준 대처 켈트너와 폴 에크만의 이야기가 실리기도 했다. 그 글에 따르면 피트 닥터가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처음 이들을 찾아온 시점은 5년 전인 2010년이다. 그는 그때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이 100% 과학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폴 에크만이 규정한 인간 감정의 수는 6개인데 영화에는 ‘놀람’이 생략됐다. <더 디졸브> 인터뷰에 따르면 캐릭터로 구성하다 보니 놀람과 분노가 비슷한 패턴을 보일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다만 오락 영화니까 <인사이드 아웃>은 과학적이어야 할 의무도 이유도 없다. 과학을 바탕으로 하되 어느 정도는 극적 허용을 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실제 뇌 연구가가 본 <인사이드 아웃>은 어땠을까? “아무튼 신선하긴 하다.” 미국 럿거스대학교 세포 생물학 및 신경과학 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 과정에 있는 박선미의 말이다. “꿈이 추상화되는 장면,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가는 내용은 어느 정도 비슷하다. 다만 뇌 과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실제로 영화처럼 감정이라는 게 뇌 안에 머무르며 하나하나 뭔가를 조절한다고 볼 수는 없다.” 내 머릿속에 다섯 개의 감정들이 뛰어다니지는 않는 것이다. 


비슷한 부분도 있다. “영화의 하키 섬이나 가족 섬처럼 높은 수준으로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니라도, 외부 자극에 의해 보상을 느끼는 역치는 각 부분의 조건에 따라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반복되는 단기 기억이나 강렬한 기억이 장기적인 기억이 저장되는 곳으로 가는 것도 사실이다. 본부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라일리 일행이 들어가는 ‘추상적 건물’ 장면도 흥미로웠다. 뇌에도 일차적인 감각을 입력하면 그 감각 정보를 통해 추상적으로 상위 정보를 생성하고 처리하는 기관이 있다. 대신 그 부위들이 조금씩 다른 부분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라일리 일행처럼 몇 개의 건물을 돌아다니기는 힘들 것 같다.” 정리하면, “영화 내용의 몇 %가 실제와 같은 지 말하기는 어려워도 전체적으로 고전적 뇌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둔 면이 보인다.” 질문은 남는다. 왜 뇌일까. 왜 간도 장도 위도 아닌 뇌 이야기일까?


뇌 과학이 지금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과학 분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음악과 패션처럼 과학 연구 분야에도 유행이 있다. 뇌과학은 지금 가장 각광받는 연구 분야다. 2012년 인터뷰에서 만났던 물리학자 이기진은 “물리학은 영광을 많이 누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지금 영광을 누리고 있는 과학 분야는 “생명공학이나 바이오 등의 융합 과학”, 그 중에서도 뇌 과학이다. 왜 하필 뇌 과학 분야일까? 


“이제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술이 생겼어요. 이게 하나의 이유입니다.” 뇌 과학의 인기가 궁금해 물어본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의 말이다. “기존에 뇌를 다루던 생물학이나 의학 같은 학문의 접근법으로는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연구할 수가 없었어요. 이제는 복잡계 물리학이나 첨단 공학 등 외부에서 발달한 학문을 도구 삼아서 뇌를 연구하는 것이 가능해졌어요. 이건 학제간 연구이기 때문에 뛰어난 인물들이 모여서 해야 합니다. 이게 뇌 연구가 최근에 발달한 하나의 이유입니다.” 인류문명이 21세기 초에 이른 지금에야 뇌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각종 기술이 갖춰지고 있다.


과거의 뇌 연구와 지금의 뇌 연구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20세기 초반의 뇌 연구는 뛰어난 사람이 죽고 나면 뇌를 꺼내 무게를 재어 보는 수준에 머물렀다. 뇌과학자 승현준이 쓴 <커넥톰>의 첫 부분에는 프랑스의 유명 작가 아나톨 프랑스 사후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의 뇌 무게는 1024g, 보통 사람보다 25~50% 정도 작은 수준이라 영국의 인류학자 케이스 경이 무척 당혹스러워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반면 투르게네프는 2021g이었다고 한다. 러시아인이란…)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뇌 과학 연구 기법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기술적 발전만이 이유인 건 아니다. 


가장 티가 많이 나는 풀무질은 대단위 연구 지원이다. 유럽과 미국이 정부 단위로 엄청난 예산을 걸고 뇌 연구를 시작했다. 2013년 4월 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브레인 이니셔티브’를 시행한다는 역사적인 첫 연설을 시작했다. 세계의 과학자들이 모여 인간 뇌의 전체 신경 지도를 밝히는 연구다. 당장 2014년부터 1억 달러의 연구 자금이 투입된다. 유럽도 비슷한 종류의 연구인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EU가 11억 유로가 넘는 자금을 지원하는 대형 과학 프로젝트다. 윤신영도 뇌 과학 연구 붐의 이유로 대규모 지원을 꼽았다.


위키피디아에 나온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 참여 대학 목록을 보면 뇌 과학이 얼마나 다양한 학문과 엮이는지 알 수 있다. 로잔 연방 공과대학교에서 신경 자극을,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컴퓨터를, 로잔 대학 병원에서 의학 관련 사항을 지원하는 식이다. 미국의 브레인 이니셔티브 역시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가 모여서 연구를 진행한다. 윤신영은 이 상황을 묘사하며 멋진 비유를 사용했다. “16세기에 신대륙을 발견하고 진출할 때 유럽 각국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시도를 만든 것이었어요. 지금 사람들이 하는 일도 뇌 속 세계라는 더 긴 항해를 위해 지도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이 지도가 다 알려진다면 이론적으로는 전신마비부터 정신질환에 이르는 기존의 불치병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된다. 


뇌과학의 인기와 <인사이드 아웃>의 흥행을 연결시키면 ‘최신 문화 현상은 최신의 과학을 만나 새로운 서사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가설이 나온다. 문화와 과학이라면 왠지 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의 각종 최전선은 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증거도 많다. 미국이 우주 개발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스타트렉>이나 <스타워즈>의 세계관을 이룬 상상력은 만들어질 수 없었다. <람보>나 <택시 드라이버>같은 영화도 당시의 현실이었던 베트남 전쟁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을 영화다.


과학과 대중문화의 공통점은 각자 분야의 맨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의 최전선은 미지의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현장이다. 이쪽을 보면 뭐가 됐든 늘 새로운 것이 있다. 다른 쪽에는 늘 새로운 뭔가를 기다리는 문화 소비자가 있다. 우리는 모두 쉽게 질리기 때문에 대중문화 시장의 생산자들 역시 늘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그래서 문화상품 생산자들은 아직 이야기가 되지 않은 재미의 원석을 찾아 다닌다. 그러다 보니 <인사이드 아웃>처럼 뇌 과학과 심리학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전체 관람가 영화도 나오게 된 것 아닐까. 최신의 것을 구한다는 사실이 언뜻 보기에는 상관이 없는 두 요소의 연결고리로 작용할 수 있다.


연결은 뇌과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지금의 뇌 연구는 1000억 개에 이르는 뇌세포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구한다. 그 세포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어느 세포가 다른 세포와 연결되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예측 정도는 쉽게 해볼 수 있다. 뇌의 유행 역시 과학과 문화 현상이라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개념이 연결되어 의외의 결과가 나온 예에 속한다. 당장은 몰라도 모든 것이 연결된 채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이거야말로 뇌 과학과 뇌 유행이 함께 주는 가장 큰 교훈일지도 모르겠다.


남성지 <루엘>에 실렸던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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