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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n 28. 2016

기술과 마음

루미네이드, 선의의 적정기술

©luminaid.com

내가 물건을 말하는 원고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글을 만드는 나 자신이 기술을 잘 모른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이런 글을 빠짐없이 읽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싶지만 그 이야기는 잠깐 빼 두자). 아무튼 나는 소위 테크 업계의 기술에 정통하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큰 관심도 없다. 쿼드코어니 쿨링 시스템이니 BA 유닛이니 DAC니 안드로이드니 하는 말들은 잘 모른다. 그냥 생산 당사자들끼리 붙인 이름 아닐까? 그걸 다 꿴다고 좋은 기술 원고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기술과 공학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존경한다. 인류 문명은 기술과 공학 덕에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기술 덕분에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다. 음식을 오래 보존하고 사람들과 쉽게 연락한다. 연주되는 음악을 듣는 건 수 세기 전만 해도 귀족만의 권리거나 축제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글을 편하게 만들고 당신이 이 글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도 기술 덕분이다. 들여다보면 기술과 공학이 예술과 별로 다르지 않음도 알 수 있다. 기술과 공학의 세계 안에는 빛나는 창의성과 아름답게 짜인 논리와 순수한 열정이 있다. 가지 않은 곳을 가고자 했던, 어두운 부분을 밝히고자 했던, 불확실성 앞에서 기꺼이 오른발을 뻗었던.


지금의 테크 업계가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전 세계의 천재들이 미국 서부에 모여 어떻게 하면 자기들이 만들어둔 생태계에 빠뜨릴 수 있을지만 고민하는 것 같다. 애플은 우아한 인테리어/익스테리어와 강력한 수직통합적 소프트웨어/하드웨어로 사용자의 건강정보부터 PC 사용 빈도까지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구글도 모든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걸 뒤적거리는 사용자의 모든 패턴을 가져간다. 아마존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스타벅스도 그런 걸 한다.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대형 종교가 몇 없는 것처럼 우리가 고를 수 있는 IT 생태계도 별로 없다. 요즘 소비자용 기술은 삶의 요령을 바꿀 수는 있어도 삶의 원리를 바꿔주지는 못한다. 평생 동안 새로운 디바이스라는 프리즈비를 향해 달리는 개처럼 살 것 같아서 가끔은 두려워진다.


못 보던 기술로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과 세상이 달라지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둘을 혼동한다. 세상을 조금 더 낫게 하는 건 첨단 기술이 아니라 기술과 결합한 통찰, 결국 사려 깊은 마음이다. 누군가는 아직 그런 걸 한다. 루미네이드처럼.




루미네이드 사용법. 간단하다. ©luminaid.com

루미네이드는 휴대용 조명이다. 비닐로 만든 공기 베개에 전구와 태양열 집전판을 붙였다. 숫자로 정리되는 스펙은 이렇다. 완전히 충전하는 데는 7-10시간이 걸린다. 약하게 틀어두면 30시간까지 견딘다. 점등은 4가지 모드가 있다. 재충전 없이 2년동안 보관할 수 있다. 평생 배터리는 10000시간 정도 지속된다. IPX 7 등급의 방수 성능이 있다. 가격은 24.95$. 한국에서도 3만원 조금 넘는 가격에 판다. 숫자로 보면 그저 그런 물건이다. 그런데 이 물건의 진짜 가치는 숫자 바깥에 있다.


루미네이드가 만들어진 계기는 2010년의 아이티 대지진이었다.  당시 디자인을 공부하는 대학생이었던 안나 스토크와 안드레아 스레쉬타는 그걸 계기로 극한 상황의 필수품을 떠올렸다. 흔히 구호품의 기본으로 꼽히는 건 물과 식량과 거처다. 이들은 거기서 하나를 더 떠올렸다. 빛. 도시에 사는 우리는 어디서나 빛을 구할 수 있으니 이 자원의 소중함을 잊는다. 하지만 빛은 인공적인 자원이다. 달이 없는 밤의 산 같은 곳에서 하루만 묵어도 그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대규모 자연재해에서는 전력 공급도 다 끊어진다. 이럴 때의 밤은 완전한 암흑이다. 빛은 꼭 필요하다.


루미네이드는 스펙을 과시하는 아이콘이 아니라 목적에 최적화된 적정기술이다. 이 랜턴은 극한 상황에서의 빛이라는 목적에 충실하다. 싸고 가벼우며 전력 공급원이 없어도 밤에 빛을 낼 수 있다. 방수도 되고 물에도 뜬다. 접으면 손바닥만하고 펴면 넓어진다. 험하게 다뤄도 깨지지 않는다. 이건 도시가 아닌 야전의 것, 남에게 뽐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밖에서 쓰는 물건이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호 상황에서 흔히 쓰는 촛불에 비하면 대단한 발전이다. 어느 모로 봐도 촛불보다 낫다. 초에 불을 붙이려면 물에 젖지 않은 성냥이나 라이터가 필요하다. 촛불은 입김만 불어도 꺼질 정도로 나약하며 광량도 보잘것없다. 화재나 화상 등의 2차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세상은 무척 넓다. 우리가 광대역 모바일 인터넷을 쓰니까 다른 곳도 그럴 거라는 건 아주 큰 착각이다. 세계의 꽤 넓은 곳은 루미네이드같은 물건을 필요로 한다.


루미네이드는 만들기 어렵지 않다. 물건만 놓고 보면 소형 튜브에 LED 전구와 태양 전기 집전판을 붙여놓고 방수 처리를 했을 뿐다. 포스 터치나 무인주행같은 것에 비하면 방학숙제 수준이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 내게 빛을 줄 수 있는 물건은 루미네이드다.


혁신은 기술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발상에서 나오기도 한다. 셀카봉에는 새로운 기술이 하나도 없지만 사람과 세계를 보는 통찰이 있다. 루미네이드는 어떤 문답의 과정과 결과같다. 문명 세계를 사는 사람들이 덜 개발된 지역을 보고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서 저 사람들의 상황을 낫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의 대답. 그런 걸 통찰이라고 한다.



루미네이드의 6년. 내 6년과는...(생략) ©luminaid.com


루미네이드가 만들어지고 알려진 방법은 21세기적이다. 이들은 초기 생산 비용을 인디고고에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해결했다. 운도 좋았다. 마침 스타트업이 유행할 때였다. CNN이 ‘스타트 스몰 씽크 빅’이 루미네이드를 취재했다. 시대적 통찰과 시대의 요구가 적합한 상황에서 터지면 성공한다. 루미네이드는 그 줄을 잘 탔다. 백악관과 와이어드가 루미네이드를 소개했다. 국경 없는 의사회도 루미네이드를 쓴다. 이들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루미네이드를 사면 톰스 신발처럼 하나를 샀을 때 하나가 어려운 지역에 기부된다. 벌써 1만 개의 루미네이드가 전 세계에 기부됐다. 세계 곳곳의 어두운 곳이 1만 배 밝아진 것이다. 대학생 두 명이 5년만에 이룬 일 치고는 대단하다. 내 대학 졸업 후 5년을 생각하니까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그렇다고 해도 이게 내 생활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이게 진짜 통찰이야?'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 루미네이드를 시대의 아이콘이나 히트상품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몰건엔 요즘 물건에선 찾기 힘든 선의가 있다. 안 좋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어떤 물건이 필요할지를 떠올린 마음이. 세상이 재미없게 변하고 있다는 걸 나타내는 다양한 신호가 떠오르는 시대지만 아직도 누군가는 이런 마음으로 뭔가를 떠올리고 물건을 만든다. 세상은 그만큼 덜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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