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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y 17. 2016

위블로 빅 뱅, 오늘의 고급품

스위스의 저력


‘위블로 빅 뱅이 21세기의 클래식이다’라는 명제에 반대할 시계 애호가들을 많이 알고 있다. 논리도 안다. 위블로 측에서는 달갑지 않을 이야기겠지만 이제 와 딱히 숨길 것도 없다. 어디서 본 디자인 요소를 가져와 소재만 그럴싸하게 섞은 후 마케팅으로 부풀려서 엄청나게 비싸게 파는 시계.


저 이야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빠져 있다. 위블로 빅 뱅의 8각 케이스가 다른 브랜드에서도 보이는 건 사실이다. 이건 위블로의 아버지 장 클로드 비버가 컬트적인 시계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에게 직접 배운 것이다. “그는 내게 시계 디자인을, 물건에 섹스 어필과 영혼을 불어넣는 법을 알려주었다. 내가 만든 시계 특유의 감수성, 색채와 소재에 대한 나의 사랑, 그리고 ‘보이지 않는 존재감’에 대한 사랑은 내 옆에서 그가 가르쳐준 비밀이다.” 올해 <베너티 페어 온 타임>에서 장 클로드 비버가 한 이야기다.


위블로에 대한 비난은 이렇게 압축된다. 역사 없음, 언론 플레이, 마케팅 많음. 모르시는 말씀, 시계 브랜드의 역사처럼 부질없는 것도 없다. 지금 전통을 자랑하는 ‘워치메이커’는 거의 대부분 쿼츠 파동 등의 한파를 넘기지 못했다. 겉으로는 100년 전통인데 알고 보면 신장개업인 곳도 적지 않다. 위블로는 남의 이름을 빌려오지도, 가짜 역사도 따오지 않았다. 마케팅? 지금 점잖은 척을 하는 브랜드는 90년 전부터 귀신 같은 이벤트와 마케팅을 거듭하며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위블로와 다른 역사적인 브랜드의 차이는 하나뿐이다. 위블로는 현재진행형 브랜드라는 것. 고가 시계라는 말장난 전체를 부정한다면 모를까 위블로만 비하하는 건 옳지 않다. 차라리 위블로가 순결하다.


성공이 모든 것을 덮는다는 논리를 모든 곳에 적용할 순 없다. 그건 아주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여기는 상업의 세계니까 위블로의 성적이야말로 위블로의 가장 큰 지지세력이다. 장 클로드 비버가 배워왔다는 ‘보이지 않는 존재감’같은 건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는 스위스 시계 업계에서도 각 부분의 디테일에 정통하기로 유명하다. 위블로의 성공 비결은 간단하다. 품질과 이미지를 제대로 관리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지적 동의를 얻는 건, 즉 ‘아 그거 좋은 시계지’라는 공감을 얻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도 고급 시계 업계의 노회한 라이벌 사이에서라면 더욱. 위블로는 빽빽한 경쟁 사이에서 당대 사치품의 시대정신을 절묘하게 선취했다. 간결한 콘셉트와 화려한 디테일, 적절한 마케팅과 탁월한 순발력. 위블로의 방법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위블로 같은 브랜드가 많아야 할 텐데 지금 스위스발 고급 시계 중에서 새로운 이름과 정체성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이룬 브랜드는 하나뿐이다. 그게 위블로다. 지금 보는 빅 뱅으로. 이 시계는 2005년에 첫선을 보이고 2015년 출시 10주년을 맞았다.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클래식이다.


남성지 <루엘>에 실렸던 원고입니다.




이 원고를 만들 때쯤엔 오래된 브랜드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게 한참 유행이었습니다. 세상은 앞으로 나가고 있는데 비싸고 좋은 걸 찾기 위해선 계속 뒤돌아봐야만 하는 걸까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는 이 시대의 무엇에 21세기의 고전이라는 호칭을 붙일까?’ 라는 질문을 떠올리고 여섯 개의 예상 답안을 떠올렸습니다. 위블로는 처음 떠올린 답안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오늘 저녁부터 하루에 하나씩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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