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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Aug 01. 2016

옷 안의 세계관

이탈리아 남성복 슬로웨어 CEO 인터뷰



세상엔 실로 수많은 고가품이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잡지에서 일하며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도 “그 비싼 걸 어떻게 사?” 였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비싼 물건이 팔린다는 것은 그 물건이 손님들에게 그만한 가치를 한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설득했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에는 인정할 만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높은 가격을 납득시킨 브랜드도 많이 있습니다. 비싼 물건 자체를 인정하든 미워하든, 그들이 어떻게 까다로운 손님들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한번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이른바 고부가가치 같은 개념이 중요한 때라면 더욱.


이탈리아에는 슬로웨어라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이름처럼 패스트 패션과 반대되는 개념의 슬로우 웨어라는 개념으로 옷을 만듭니다. 좋은 소재를 쓰고 기본적인 모양의 옷을 만드는데 모든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되 대놓고 티를 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아하고, 그만큼 비쌉니다.


자유기고가로 일할 때 저의 든든한 친구 같은 <루엘>의 박정희 에디터와 함께 이 브랜드의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흥미로운 기획에서 슬로웨어의 CEO 로베르토 콤파뇨 씨와의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각종 브랜드의 여러 담당자와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지만 이 분의 인터뷰 답변은 꽤 대단했습니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이래서 이탈리아 남자들이 그렇게 여자를 잘 유혹하나’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옷에 일종의 자기화한 시대정신을 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질문지를 읽고 꽤 감탄했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물건을 만들고 있었구나 싶어서요. 개인적인 취향이 아님에도 슬로웨어라는 브랜드에 대해 호감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멋진 사상은 돈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옷 많이 팔려고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어차피 생산과 소비는 삶에서 빼기 힘든 일부가 되었습니다. 기왕 뭔가 사고 팔 거라면 깊이 생각해서 물건을 만들고 멋진 말과 함께 파는 쪽에 좀 더 호감이 갈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에 로베르토 콤파뇨 씨와의 인터뷰를 공유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께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브랜드의 이름을 ‘슬로웨어’라고 지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2000년대 초반에 슬로웨어라는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그때는 모두 ‘패스트 패션’을 말했습니다. 다들 의류산업이 세계화 시대를 맞았을 때 가능한 미래는 그것뿐이라고 여겼습니다. 슬로웨어는 하나의 슬로건이었습니다. 튼튼한 패션, 옷장 안에서 오래 가도록 디자인되고 생산되는 옷을 만드는 우리에게 즉각적이고 명확한 모토가 되었죠.

느림의 철학을 따르는 옷은 라이프스타일인 동시에 영리한 구매 옵션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높은 품질과 시간을 초월하는 스타일을 목표로 합니다. 우리는 계절성 트렌드 사이에서도 살아남는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운 소재를 좋아합니다. 고객에게 편안함과 자신감을 동시에 줄 수 있지요.



당신에게 ‘슬로우 라이프’는 무슨 의미입니까?

슬로우 라이프스타일이 꼭 빠른 속도와 반대되는 개념은 아닙니다. 슬로우 라이프스타일의 반대편에 있는 건 ‘서두름’입니다. 우리가 옷을 만들며 고민하는 건 순간의 기쁨만이 아닙니다. 그 옷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옷을 얼마나 오래 입을 수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베니스에서 진정한 슬로우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마초르보, 펠레스트리나와 S. 피에트로 디 카스텔로를 추천하고 싶군요. 모두 베니스 안에 있는 작은 섬들입니다. 레스토랑도 물론 추천할 수 있지요. 마초르보에서는 ‘마달레나’, 펠레스트리나에 있는 ‘셀레스트레’, 미제리코르디아의 ‘알 티몬’을 좋아합니다.


슬로웨어는 이제 국제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떻게 슬로웨어의 정신을 지속시키고 있습니까?

슬로웨어는 단순한 브랜드를 넘어 국제적인 현상에 가깝습니다. 이건 사실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제품을 통해 우리의 철학과 일관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현상이 되었다는 것이 우리가 글로벌 브랜드의 문법을 따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철학과 신념을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기적으로 한 발짝씩, 제대로 된 방식으로 계속 성장합니다. 제대로 된 성장 방식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컬렉션을 만들 때와 같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5년 동안 28개의 매장만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매출은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오르고 있습니다. 슬로웨어식 성장은 가능합니다. 훼손되지 않은 65년의 역사와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우리 회사가 그 증거입니다.


슬로웨어를 만들 때 어디에 가장 신경 쓰십니까?

우리는 컬렉션을 디자인할 때 시간을 들여 인내하며 가장 뛰어난 소재와 핏감, 그리고 디테일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피팅(Fitting), 패브릭(Fabric), 피니싱(Finishing)에 공을 들이는 우리의 ‘3F 룰’입니다. 고객의 옷장 속에서, 그리고 덧없이 흘러가는 패션 트렌드 속에서 살아남는 옷을 만들기 위한 규칙이지요. 오래 지속되는 완벽한 핏, 편안하고 세편된 스타일을 만든다는 목표는 우리의 엔진이 되어 줍니다.


입는 사람이 모른다 해도 만드는 사람은 신경 쓰는 슬로웨어만의 디테일이 있나요?

우리는 늘 강박적일 정도로 디테일에 집중하며 소재를 만듭니다. 우리는 옷의 마무리와 디테일 부분에서 우리만의 고유한 시도를 여러 차례 해 왔습니다. 우리가 한 걸 뒤이어 하는 다른 브랜드도 많이 있었습니다. 패션이라는 한 분야에 60년 이상 전문화되며 획득한 기술과 노하우 덕분에 완벽한 옷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많은 패션 관계자와 VIP가 슬로웨어를 좋아합니다. 왜일까요?

지속과 인내가 비결입니다. 우리는 옳다고 생각하는 걸 계속했습니다. 시장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지속성이 우리의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게 우리 관계자와 고객이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우리의 VIP입니다.


어떤 사람이 슬로웨어를 입었으면 좋겠습니까? 당신의 이상적인 고객은 누구입니까?

이상적인 손님을 상상하는 걸 넘어서, 나는 당신에게 현실의 자연스러운 손님을 묘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확실한 자아가 있고, 뻔하지 않고, 디테일에 집중하고, 좋은 품질의 물건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고, 글로벌 브랜드를 거부하며, 로고로 물건을 고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슬로웨어를 생각했을 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길 바라십니까?

우리의 스타일은 ‘스마트 캐주얼’입니다. 업무 시간과 휴식 시간에 모두 어울립니다. 우리는 소재와 실루엣에 따라 다양한 제품군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셔츠와 재킷만 봐도 그렇지요. 우리만의 특징을 유지한 채로 조금 덜 포멀한 컬렉션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옷에도 현대적인 면모, 아주 높은 품질의 소재, 뛰어난 스타일이라는 슬로웨어의 철학이 들어 있습니다. 고객의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포멀’하거나 덜 포멀한 조합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사실 도시 생활은 아무리 노력해도 100% 느리기 힘듭니다. 그렇다 해도 ‘슬로우 라이프’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신 말이 사실입니다. 느릴 수 없다는 것이 현대 사회의 덫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슬로우 라이프’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선택과 방침에 가깝습니다. 속도를 늦추는 법을 아는 것, 잠깐 느려지는 휴식 없이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실행해 봐야 당신은 뭔가가 바뀔 수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저 자신, 그리고 저와 일하는 사람들은 쉬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강하게 믿습니다. 업무 효율성은 재충전 가능성과 강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기분 좋은 일을 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게 중요합니다. 속도를 늦출 줄 안다면 삶이 나아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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