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의 클래식, 애플의 팝
2016년은 애플의 창사 40주년이다. 애플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애플의 세계관을 숭배하든 증오하든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이 회사가 세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숫자가 근본적인 존재 이유인 기업의 세계에서 애플은 4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가 되었다.
애플이 다른 IT기업/대기업과 가장 달랐던 점은 예술을 대하는 태도였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라는 기업을 통해 예술을 하고자 했다. 아니면 그 자체로 예술이 되고자 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적당히 좋은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가 열광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어했다. MBA 케이스 스터디나 통계 자료를 근거로 사람들을 설득한 게 아니라 비틀즈가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를 열 번 재녹음한 걸 들으며 영감을 얻어 사람들을 밀어붙였다. 그게 어디서나 통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애플이 성공한 것만은 사실이다.
애플의 40주년을 몇 곡의 노래로 정리해보려 한다. 억지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플과 노래에는 꽤 끈적한 관계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고 애플이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는 산업과 상품으로의 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 사실 억지면 또 어떤가 싶기도 하다. 인터넷의 축복 하이퍼링크와 유튜브 덕분에 이 음악들을 실제로 들어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좋은 노래는 좋은 책의 구절이나 좋은 식당의 메뉴처럼 잠깐이라도 삶을 조금 더 괜찮게 만들어 준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과 연관이 있는 노래를 들으며 잠깐이라도 생산성이나 여러 가지를 잊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Glenn Gould- Bach Goldberg Variations
스티브 잡스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랩 음악은 별로 안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건 랩의 문제라기보단 모든 사람은 어느 나이가 지나면 새로운 음악은 받아들이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스티브 잡스는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평생 들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굴드는 나중 버전(1981)을 훨씬 좋아했어요. 나는 초기 버전(1955)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굴드가 후기 버전을 왜 좋아했는지 알 것 같네요.” 라고 말했다. 당신은 언제 버전이 더 좋으신지? 개인적으로는 굴드의 골드베르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The beatles- strawberry field forever
비틀즈의 1967년작 싱글로, ‘페니 레인’과 함께 싱글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 노래를 10회에 걸쳐 수정하는 과정이 수록된 해적판 앨범을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곡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계속 앞으로 나가는 과정은 애플이 물건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1955년생인 스티브 잡스는 그 시기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비틀즈로 대표되는 록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롤링)스톤즈는 다른 밴드로 대체될 수 있지만 비틀즈와 ㅇㅇ는 대체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ㅇㅇ이 누구냐 하면…
Bob Dylan – One too many mornings
밥 딜런이다. 스티브 잡스가 밥 딜런을 가장 좋아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인용할 노래를 찾을 때 참고한 자서전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밥 딜런의 전집을 본인의 아이팟에 넣어 다녔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One too many mornings’이다. 1964년작 ‘The times they are a-changin’에 수록되어 있다. 비틀즈와 딜런의 노래는 둘 다 스티브 잡스의 유소년기에 나온 노래라는 공통점이 있다. 유소년기에 뭘 듣느냐는 정말 중요한 것 같다.
Joan Baez- Love is just a four-letter word
밥 딜런은 조안 바에즈와 연애한 적이 있고 스티브 잡스도 조안 바에즈와 연애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가십으로 넘겨두기엔 너무 위대한 음악인이다. 그녀는 8장의 골드 앨범과 1장의 골드 싱글 레코드를 가지고 있고 200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인권 운동가이자 반전 평화 운동가이기도 하다. 미국의 2개 주가 ‘조안 바에즈의 날’을 제정했다. 스티브 잡스가 가장 좋아한 그녀의 노래는 1968년작 ‘Love is just a four-letter word’다.
Joni Mitchell- Both sides now
뛰어난 연주자가 훌륭한 곡을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노래는 멋진 가수들에 의해 언제든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조니 미첼은 그녀의 명곡인 ‘both sides now’를 1969년 처음 부른 후 2000년에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한번 더 불렀다. 스티브 잡스는 두 번째 버전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두 번째 버전은 조금 묵직하고 현명하지만 젊지는 않아서, 이쪽이 좋다는 말은 왠지 조금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노래는 마이클 패스벤더가 나온 영화 <스티브 잡스>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다.
Norah Jones- Come away with me/ forever young
노라 존스는 2009년 애플 키노트에서 노래를 불렀다. 책 <인사이드 애플>에 따르면 유난하기로 유명한 애플의 보안 때문에 그녀는 공연 직전까지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가 키노트에서 불렀던 노래는 가사가 아름다운 ‘come away with me’다. 노라 존스와 애플과의 사이는 그 이후에 괜찮아진 모양이다. 노라 존스는 스티브 잡스의 추도식에도 초청받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밥 딜런의 ‘forever young’을 불렀다.
Coldplay- fix you
영국의 밴드 콜드플레이도 스티브 잡스의 추도식에 초대받았다. 콜드플레이 역시 스티브 잡스가 좋아한 밴드 중 하나였다. 콜드플레이는 스스로의 노래를 광고 배경음악으로 잘 주지 않는데 그들이 광고 삽입을 허락한 몇 안 되는 회사가 애플이었다. 콜드플레이는 스티브 잡스의 추도식에서 ‘yellow’와 ‘viva la vida’, ‘fix you’와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을 불렀다. 콜드플레이와 애플은 아직 각별한 사이로, 크리스 마틴은 애플 워치 발표회에도 참석했다.
Randy Newman- you’ve got a friend in me
이렇게 음악을 좋아한(음악으로 흥하기도 한) 기업가의 추도식 마지막 노래는 무엇이었을까? 밥 딜런? 조안 바에즈? 비틀즈? 콜드플레이? 노라 존스? 글렌 굴드? 다 틀렸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추도식 마지막 노래로 토이 스토리의 삽입곡 ‘you’ve got a friend in me’ 를 골랐다. ‘눈앞의 길이 험할 때/너의 근사하고 따뜻한 침대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때/오랜 친구가 했던 말만 기억해/넌 친구가 있다고’. 다시 한 번, 당신이 애플을 어떻게 생각하든 이들이 확실히 재치는 있는 것 같다.
<더기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