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창업 도전기 (1) 시발점
나는 배 위에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수평선 사이에는 생물같이 일렁이는 파도의 패턴이 수놓아졌고 그 패턴에 맞춰 배가 두둥실 움직여댔다.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니 심경이 복잡했고 생각은 단순했다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나는 다만 '박사과정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삼 개월이 넘게 견디지 못할 것만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삼 개월 전에 나는 처음으로 논문 한 편을 완성했고 세부에 오기 전에 저널 에디터의 코멘트를 반영한 수정 원고를 탈고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성취감이 아니라 쓰디쓴 좌절감이었다. 누구도 내 결과물을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의 평가가 최악이었을 뿐이다. 객관적 현실은 나쁠 것이 없었지만, 아니 어쩌면 최고였지만 심리적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간단히 말해 마음의 문제였다. 하지만 제일 고치기 힘든 것도 역시 마음의 문제가 아니던가. 그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른 지면에서 다룰 것이다.
아무튼 대학원 입학 후 처음으로, 그러니까 5년 만에 나는 연구의 길을 관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석사과정 2년을 마친 직후에도 나는 절망했지만 포기할 생각은 않았다. 한 학기 정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궤도에 오르리라 다짐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3년 뒤 박사 수료까지 마친 뒤에 나는 또다시 절망하고 있었다. 이번에 절망은 우울의 형태로 찾아왔다. 나는 언제나 불안과 친구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새롭게 찾아온 우울은 불안보다 더 깊이 스며들었다. 2025년에 나는 반갑지 않은 새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그에게 속절없이 끌려다녔다.
그 와중에 나는 반년 전, 2024년 겨울에 일찌감치 계획한 세부 스쿠버다이빙 여행에 가게 되었다. 그 겨울, 이 여행은 논문에 탈고했을 '나를 위한 선물'로 계획되었지만, 이 여름, 우울함의 동굴 속에 갇힌 내게 이 여행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여행은 나를 동굴 속에서 끌어냈다. 강력한 동인은 엉뚱하게도 '바 창업'에 대한 꿈이었다. 갑자기 웬 바? 그 아이디어는 세부에서의 세 번째 저녁, 마사지를 받고 있을 때 불현듯 떠올랐다.
우울했던 나는 당시 하루 대부분을 고양이처럼 잠만 잤고, 그나마 깨어있는 시간은 머리가 멍했고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세부에서 마사지를 받을 때는 아니었다. 솜씨 좋은 마사지사 덕분에 온몸의 기분 좋은 감각이 깨어났다. 통창이 열려 방안에 공기가 순환하고 환기되는 것처럼 머릿속에도 신선한 바람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이때 바람에 든 것이다. 춤바람 대신에 바 바람(?)이.
나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듯 살아왔다. 언제나 마감은 블랙홀처럼 나는 빨아들였다. 자기장 안에서 나는 언제나 불안했고 급기야는 우울했다. 하지만 세부 마사지 샵에서 나는 그 자기장 밖에 있었고 불안하거나 우울하지 않은 삶, 그러니까 대안적 삶을 상상할 기회를 가졌다(물론 인간 삶에는 적당한 수준의 불안과 우울이 불가피하고 필요하기도 하지만, 내가 겪던 수준은 필요 이상이었다). 대안적 삶의 구체적인 모양은 마사지 샵과도 닮아 있었다. 나무로 이루어진 따뜻한 공간, 따뜻한 조명, 진정이 되는 아로마, 거슬리지 않는 음악. 따로 또 같이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는 자유, 그리고 무엇보다 공감각적으로 나를 돌보는 감각. 잠시만, 나 그런 시간을 살아본 적이 있었지?
그건 와인바 <음주가의 책방>에서 알바할 때였다. 사장님이 직접 목공을 배워 짜낸 가구, 바닥, 벽체는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하는 어둠 속 스포트라이트 조명 속에서 손님들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작업에 몰입했다. 1인 바였던 그곳에서 나는 혼자 모든 일을 했지만, 밀려든 주문을 쳐내고 나면 책을 읽을 짬이 났다. 부산스럽던 나까지 가만히 책을 읽게 되면, 공간은 독서가들로 가득 찼다. 그때 나는 묘한 동질감과 만족을 느꼈다. 알바를 그만두고 느낀 거지만, 그 안온한 감정은 내게 가장 충만한 행복의 형태였다.
마사지 샵의 따뜻한 공간감과 나 자신을 돌보는 서비스는 <음주가의 책방>에서의 안온한 행복을 되살렸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깨달음은 '박사 탈출의 염원'과 합성되어 '와인바 창업의 꿈'을 생성했다(지금은 와인이라는 아이템은 버렸지만). 사실 그건 객기였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쓸데없이 부리는 혈기' 말이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미 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박사 수료생이 번아웃이 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 객기는 다시 내가 살아있다는, 아니 살고 싶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오랜만에 내일이 기대되는 기분을 느꼈고 평균 수명 백세시대에 70년이나 더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오지 않았다.
마사지를 받으며 나는 행복한 고민에 흠뻑 빠졌다. 와인바의 콘셉트부터 상호까지 그 자리에서 뚝딱 나왔다(지금은 모두 기각되었다). 끝나고 핀터레스트에 새 폴더를 생성해 신나게 레퍼런스를 저장했다. 이름과 비주얼까지 나오니 뜬구름 같던 와인바가 손에 잡힐 듯했고 마음이 벅차올랐다. 물론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같이 온 일행들에게 신나서 와인바 구상을 공유했더니, 마침 계셨던 주류업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제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와인바 추천할 것 같아요." 말인즉슨 진상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 상대방에게 악감정이 있지 않은 이상 추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에 시무룩해진 나는 다음날 배에 타서 그래도 박사과정을 마무리 짓기 위한 구상에 몰입했다(놀랍게도 이때 박사학위논문의 핵심 개념을 도출했다).
하지만 바 창업의 꿈이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엎어질 수는 없었다. 한 달하고 이주가 지난 지금, 나는 바 창업을 위한 A to Z를 열심히 알아보는 중이다. 노션에 프로젝트 페이지를 만들고, 바를 창업한 선배님들의 책을 읽고, 각종 주류에 대한 서적을 숙독하고, 상권분석이나 스몰브랜드 특강에도 발품을 팔고 있다. 이러한 실천의 기저에는 행복하고 싶은 열망, 정확히는 안온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 바 창업이 그를 위한 유일한 길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자영업자가 '정말 안온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야망이나 사명을 잃은 지금의 나에게 바는 새로운 가능성을 비춰준다. 물론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일 테고, 어마어마한 시행착오와 부작용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길'도' 가보고 싶다. 아니, 나는 이미 바 창업의 여정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여기 써 내려갈까 한다. 이삼 년 뒤에 바 마스터가 되어 책 읽는 손님들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바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나의 세세한 걸음들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한 가지 욕심을 더 내보자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이 여정에 함께해 주기를, 바에서 독자인 당신과 다정한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