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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흐동오유 Oct 06. 2018

5시, 퇴근하겠습니다

영국의 러시 아워는 4시부터 시작된다

영국에 와서 살게 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오후4~5시쯤 차가 너무 막히길래 남편에게 물었다. “이 시간에 차가 왜 이렇게 막혀?” 그러자 남편은 ‘퇴근 시간’이라서 그렇다는 충격적인 답변을 했다. 


응? 지금쯤이면 한창 시간이 안가고 출출해져서 매점에 과자 사러 갔다가 오늘은 언제쯤 퇴근할까 오늘은 저녁을 회사에서 먹을까 집에가서 먹을까 고민 하는 시간 아닌가? 무심하게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내리다보면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되는 북유럽 다큐멘터리(4~5시쯤 퇴근하고 아이들을 픽업 한 후 도란 도란 함께 앉아 저녁을 먹는)에 나오는 ‘저녁이 있는 삶’을 내가 목격 하고 있는거구나! 이런 나라는 다큐멘터리에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이런 나라가 실존하는구나! 


시간이 지나 영국의 한 은행 마케팅 팀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계약서상 정식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전 한국 대기업에서 일할 때 공식 근무 시간이 몇시부터 몇시까지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이 생각 났다. (수요일마다 선심쓰듯 오후 5시 반에 인사팀 및 총무팀에서 전사를 돌며 강제 퇴근 시키는 ‘스마트 데이’의 존재에 기뻐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직원들 사이에서 원래 정시 퇴근은 5시인가 6시인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 있어왔다). 


첫 출근을 하고 팀장과 면담을 할 때 본인은 내가 꼭 시간 맞춰 출근 하지 않아도, 자리에 늘 있지 않아도 내게 주어진 일만 잘 하면 상관 없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해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오후 4시 반쯤 자녀를 픽업하러 가야 한다며 퇴근 했고, 한번은 아침에 차 창문이 고장 났다며 이틀간 재택 근무를 했다. 예전에 한국에서 엄청난 태풍이 있던 해 강남역에서 가슴팍까지 차올랐던 홍수를 헤치며 양재 사옥까지 출근을 했다는 얘기를 무용담처럼 하던 한국 사수님 얼굴이 순간 스쳤다. "차 창문이 고장났는데 왜 출근을 못하는거야?" 라고 옆에 있는 직원에게 되묻자 "회사 앞에 주차 했다가 열려 있는 창문으로 누가 차를 털어가면 어떻게 해" 라고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동료에게 내 마음 속 떠오르는 생각은 속으로만 삼켰다. 

‘그럼 택시라도 타고 출근 해야 하는거 아니야?’ 


금요일에는 사무실의 절반이 비어있었다. 금요일은 대부분 재택 근무를 하기 때문이었는데, 재택 근무를 하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내 옆자리 직원은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부모님 댁에서 매주 목요일 가족 식사를 하는데 이왕 간김에 부모님 댁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 싶기 때문에 금요일 재택 근무를 했다. 이 외에도 8시부터 3시 반까지만 근무하는 사람, 하루에 한두시간 씩 더 근무하고 월~목만 근무하는 사람 등 사람마다 각자의 상황에 맞도록 근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 하였다. 공식적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하지 않더라도 일이 없으면 굳이 퇴근 시간까지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5시 퇴근길 교통 정체가 시작되기 전에 20-30분씩 이른 퇴근을 하기도 했다. 


어느 월요일, 5시 전에 퇴근해 집에 왔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남편과 함께 슈퍼에서 간단히 바베큐 재료를 사서 집 앞 호숫가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리고는 ‘월요일, 퇴근 후 바베큐, 호숫가, 현재 시각 6시 이전’ 이라는 비현실적인 것들의 조합에 몇번이고 ‘지금 상황 실화냐’를 서로에게 되물었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절대 아니라서 이전에 한국 회사에 다닐 때는 버스로 15분 거리에 살았으면서도 아침마다 지각할까봐 걱정하고, 버스를 탈 때보다 택시를 타고 허겁지겁 출근 할 때가 훨씬 많았다. 그런데 퇴근을 일찍 하고 저녁에 충분히 휴식을 취하다 보니 아침에 출근 하는 것이 별로 두렵지 않았다. (물론 저녁에 약속이 없는 것도 한 몫 한다). 조금 늦장을 부려 십분 쯤 늦는다 한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굉장한 안정감을 주었다. 절대적으로 회사가 내 삶에서 차지하는 시간적 비중이 적기 때문에, 회사의 일이 내 정서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었다. 


그러나 이러한 탄력적 근무 체재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개개인의 책임감이 수반된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어른으로 대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는 마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처럼 전후 관계를 확실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영국이라는 나라가 산업 혁명의 발생지로서 오랜 노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노동 조합이 최초로 만들어진 곳이자 노동당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 하고 있는 국가라는 점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와 갈등을 통해 오늘날의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겠지 (물론 영국에도 죽을만큼 일하는 회사도 있겠지만). 또한 이곳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많은 문물을 받아들이고, 여러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융화 되어 살며 ‘남과 다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교양있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 할 때가 있는데, 결국 이러한 생각들이 다른 사람의 생활 패턴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근무 환경을 만든 것이 아닐까. 


언젠가는 한국도 해 떠있을 때 퇴근 하는 날이 더 많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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