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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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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별 May 24. 2021

또라이 필터링

누구나 또라이를 만난다.

누구나 삶에서 일정량의 또라이를 만난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이 현상을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 부르고 있다.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법칙을 온전히 받아 드리지 못한다. 믿음이 부족하고, 마음이 곱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정 조직, 특이한 상황, 우연한 시간에 아주 특별하게 발생하는 Unique 한 현상으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향후 다른 조직에 속하거나, 다른 상황을 만나거나, 주변 인물들이 변화하면 사라지는 그런 일회성, 휘발성 현상이라고 착각한다.


30대 후반을 지나면서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은 이 법칙을 완벽하게 체득하게 된다. 유년기, 청소년기, 이른 성인 시기, 초기에서 중기까지의 사회생활을 거치면서 믿음은 완성된다.


수많은 또라이 유형들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며 사람에 대해 고찰해 보자. 


아,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사실 하나.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에게, 어떤 상황에서 또라이일 수 있다.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달라서 어차피 가치간과, 선입견과, 관점에 의해 상호 주관성을 인정해야 하니까. 고로, 이하 읽게 되는 내용은 각 개인의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알린다.



오해유발형 (a.k.a. 허언형)


학창 시절보다는 사회생활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유형이다. 이들은 자기애가 무척 강해서 자신에게 매우 관대하고, 자화자찬이 능숙하며, 사전적 정의에 부합하는 거짓말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거짓말 같은 혼돈의 화법을 구사한다.


'나 돈라이'씨는 유학을 준비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그녀는 화려한 이목구비에 단정한 커트 머리를 하고 어두운 톤의 정장을 입고 등장했다.


그녀는 "00에서 일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00'은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로펌이었다. 사람들은 동경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변호사님, 공부가 지겨울 만도 한데 유학까지 가세요. 대단하세요."라며 치켜세웠다. 그녀는 웃었다. 


돈라이씨는 자신이 해외생활을 한 적은 없지만 영어를 너무 잘해서 가끔은 영국 친구의 영어도 지적한다고 이야기했다. 살짝 당황했다. 스스로 그런 말을 한다는 게 갸우뚱했지만, 그래도 '00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은 역시 대단하군' 하며 넘겼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우연히 돈라이씨에 대한 팩트를 알게 되었다.


00에서 일했으나, 변호사가 아니라 단기 계약 직원이었다는 사실. 영어 공부를 매우 좋아했으나, 네이티브 수준은 아니었다는 사실.


그래, 돈라이씨는 결코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 스스로 '변호사'라고 소개한 적이 없다. '네이티브 스피커’라서 영국 친구의 영어를 지적했다고 한 적도 없다. 모두가 우리의 오해(?)였을 뿐. 


그런데 이상하게 속은 것 같은 이 찝찝한 기분은 뭘까.

그냥 나만의 느낌적 느낌이겠지?




관종형


태초부터 존재했을 수도 있으나, 문명의 발달 특히, SNS의 등장이 이 유형을 진화시켰다고 본다. 이들은 자의식이 무척 강하고, 인정 욕구가 극대화되면서 관심을 받기 위해 허언과 과장을 일삼고, 자극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나 좀봐'씨는 여러 가지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SNS 중독이 가장 심각했다. 그는 SNS 세상에서 나름 '인싸'가 되었고, 그 세상의 관계를 매우 소중히 여겼으며,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에 강한 의무감을 느꼈다. 그는 사회가 인정하는 전문직에 종사했으며, 그런 점이 아마 SNS의 세상을 구축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매 분, 매 초, 널뛰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포스팅을 했다. 본인의 하루 동선 및 할 일 공개를 넘어 가족들의 동선과 일상, 심지어 재정 상태나 은밀한 치부까지 포스팅했고. 그런 내용은 현실과 SNS의 교집합에 속하는 사람들을 통해 빛의 속도로 퍼져 나가 가족과 주변인들은 피로도가 높았다.


자발적 신상 털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봤어? 좀봐씨가 00억짜리 집을 00 은행에서 00 이율로 0억을 대출받아 샀다네. 근데 이번 달에 해외여행을 두 번이나 간다고 비행기표를 올렸어. 다 비지니스석이야. 돈이 엄청 많은가 봐!!"


와아아아 - 


“좀봐씨가 주식에서 1억을 날렸는데, 계좌 내역까지 올렸더라. 그런데 내일 우리한테 소고기 쏘겠데! 대애박!”


와아아아 - 


"좀봐씨 차 바꿀 거라고 추천해달라고 포스팅했던데, 전문직에 엄청난 인싸니까 벤틀리 사라고 댓글 달자!”


와아아아 - 


SNS 세상의 친구들은 매일 환호했다. 


보다 못한 '현실 세계' 친구들이 그에게 상식적인 조언을 해 주었으나, 그는 조언보다 댓글 부대를 더 신뢰했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걸. SNS는 소통하는 곳 아냐?"라며 조언들을 걷어찼다. 


좀봐씨는 그렇게 계속 광기에 가까운 소통을 했고,

그 소통은 사람들의 기대 수치를 매일 경신시켰으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욱 또라이스럽게 현실을 살았다.


그렇게 그는 강력한 vicious circle 안에 살았다.


몇 년이 지나자 '현실 세계'에서 그를 소중히 여기던 사람들은 모두 그를 떠났고, SNS 세상의 친구들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 그의 현실을 알고는 점차 손절하기에 이르렀다.


이쯤이면....


'나 좀봐'씨.... 이제는 정신을 차렸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댓츠 노노! 매우 노노!


그는 떠난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친구와 팔로워들을 열정을 다해 지속적으로 만들며, 여전히 현실과 SNS의 시공을 넘나들면서 바쁘시다.


두 세계를 동시에 살고 있는 그는 천재나 외계인일까?

그냥 또라이일까?




찌질이형


가장 짠한 유형이다. 소심한데 고집이 세고 동정을 유발하나 자존심이 세다. 좀 모순 덩어리다. 


'나 만원만'씨는 조용한 얼굴을 하고 있으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술도 좋아했다. 자연스레 주변에 사람들이 항상 모였고, 약속도 많았다. 사회적 관점에서 꽤 힙한 회사도 다녔다. 


회사에서 주말에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작은 축제에 가기로 했다. 만원만씨도 손을 들었다. 입장권을 구매하려는데 만원만씨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이런, 지갑 안 가져왔나 봐. 저, 나 만원만 빌려주라."


그럴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지갑을 놓고 나간다. 


....


한 친구가 퇴근길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만원만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본인도 지금 동료 한 명과 함께 그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친구는 함께 맥주 마실 사람이 생겨 기분이 좋았다. 


만원만씨와 그의 동료는 곧 친구가 있는 맥주집에 도착을 했고, 둘은 격무로 힘들었는지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친구에게,


"우리 화장실 갔다가 1층에서 기다릴게!!"


친구는 맥주값 만원을 더 지불하고 나왔다.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화를 내면 화 낸 사람이 이상할만큼. 


....


무더운 여름. 만원만씨는 대학 동아리 친구들과 동해 여행을 떠났다. 경비는 사전에 각출했다. 탁- 트인 바다에 도착하자 모두들 신이 났고, 싱싱한 회를 시켜 술을 잔뜩 마셨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올라오자 모두 한 마음으로 "노래방 고고!!"를 외쳤다. 


그런데,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노래방 갈 돈이 남지 않았고, 그 노래방은 현금만 받는다고 했다. 친구들은 서로서로 "너 현금 있어?"를 물었는데 아무도 현금이 없었다. 


갑자기 만원만씨가 친구 한 명 곁으로 가 진짜 현금이 조금도 없냐고 보챘다. 친구가 정말 없다고 화를 내자, 만원만씨는 정색을 하며 친구를 횟집 담벼락으로 확- 밀치더니, 


"야! 너 진짜 만원도 없어? 누가 여행 오면서 현금 만원을 안 가져와?!?! 만원은 있을 거 아냐!!"


친구는 정말 만원이 없었고. 아무도 노래방은 못 갔고.


그 후 만원만씨는 더 이상 대학 동아리 친구들의 소식을 듣을 수 없었다.


.....


정말 궁금하다.

만원만씨는 왜 5만원이나 10만원은 달라고 하지 않을까.


왜 모든 순간이 '만원'일까....


만원의 행복, 뭐 그런 건가?






며칠 전, 필자의 생일이었다.

이제 만으로도 40이다.

긴 초가 빼박 4개다. 


인생 후반기는 좀 더 지혜롭게 살고 싶다. 그간 익힌 내공으로 인생의 또라이들을 감별하고 걸러내야 한다.


당신에게도 값비싼 양주라고 착각하며 마냥 Keep 해 둔 또라이들이 있을 것이다. 과감하게 작별하자.


"바이 바이, 굿바이~ 너는 이쯤에서 내려놓고 갈게. 

다시는 만나지 말기~  참, 부디 행복들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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