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다이어트
오늘은 의식의 흐름대로 뻔뻔하게 화를 좀 내야겠다.
내 또래의 엄마들은 대부분 지금과 같은 체계적인 산후조리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한결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너 낳고부터 뱃살도 생기고, 몸에 부기가 안 빠져서 그런 거지. 엄마도 처녀 땐 엄청 늘씬했다고."
"이 사진 좀 봐라. 엄마가 젊었을 땐 이렇게 날씬하고 이뻤는데. 너네 아빠 만나고 니들 낳아 키우다 보니 내 관리할 시간이 없어서 아휴 이렇게 된 거지 뭐."
"엄마도 왕년엔...."
그래. 우리 또래의 엄마들은 대부분 이렇게 우리들이 자신의 현재 몸매의 원흉이라며 비난하거나, 산후관리의 실패라고 시대를 탓하거나, 먹고 사느라 바쁘게 만든 남편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게 그렇게 우스웠다.
흥. 그냥 원래 뚱뚱했거나, 많이 먹으니까 그렇거나, 의지박약으로 다이어트를 못하니까 그런 거지. 뭔 과거 팔이, 남편 팔이, 자식 팔이를 이렇게도 유치하게 하나 싶었다. 동시에, '응. 나는 절대 안 그래. 최소한 남 탓은 안 해야지. 나야 뭐 의지가 세니까 언제든 다이어트도 잘할 수 있고.'라고 생각했다. 꽤 최근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분하게도....
황당하게도....
내가 최근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아! 진짜! 내가 결혼 전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게 다 당신이 많이 먹어서 나까지 살찐 거잖아!!!"
라는
남편을 향한 맹비난이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 통통했지만 미국 학교를 다녔으니 덩치 큰 서양 친구들 사이에선 그래도 항상 조그만 아시아인 같았고, 스무 살에 한국에 돌아왔을 땐 '44 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에 적응하기 위해 하루에 요거트 하나만 먹고 한 달간 12킬로를 빼고는 "지지배 말라가지구~"하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고, 서른이 넘어서는 더 이상 '44 공화국'의 인간은 아니었으나 옷가게에서 그럭저럭 늘씬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감 있게 옷을 구매했다. 필자도.. 진짜 그랬다.... (믿거나 말거나 되겠습니다만)
아니 그런데. 진짜 열 받게!
마흔이 되기 직전부터 살이 조금씩 붙기 시작하더니
이 망할 놈의 살이 매달 성실하게 붙고 또 붙어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안고 사느라 너무 무겁다.
적금 이자가 실상 마이너스에 가까운 이 시점에
살로 재테크했으면 최소 서민갑부였을듯.
나름 몇 번의 다이어트에 도전도 했다. 필자는 절대 운동으로 살 뺀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 부류다. 살은 결국 안 먹어야 빠진다고 철석같이 믿고, 또 그것을 몸소 체험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필자는 다이어트를 할 때 당연히 칼로리를 제일 먼저 줄이고, 탄수화물을 줄이는 방식으로 도전했다.
결론은, 살은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이어트의 방식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이어트의 방식은 초록 검색창에 '다'만 쳐도 수십 가지가 나오니 알아서들 고르면 된다. 문제는 왜 안 빠지냐는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정말 나만 안 빠지는 거니?
분노가 치밀다가도 곰곰이 생각하면 오히려 슬퍼지기까지 한다.
엄마들의 시대보다 말할 수 없이 살 빼기 좋은 인프라를 구축한 시대에 살고 있기에 똑같은 변명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고, 나아가 더 열 받는 건, 필자가 무자식이라서 출산도 하지 않았으니 더더욱 중년 여성의 가장 그럴싸한 핑계도 없는 처지라는 점이다.
그러니 마흔이 넘은 필자는 이제 남은 비난이라고는
무지하게 많이 먹는 남편과 같이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많이 먹게 되었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와,
그리고....
개인적으로 극혐 하는 '나이'에 대한 어필뿐....
나이 어필. 정말 분하다.
그토록 싫어하는 대사가 "너도 나이 들면..."이었는데,
결국 나의 탈출구도 그곳을 향한다.
사람 사는 거 별반 차이 없고, 인생도 거기서 거기인 듯.
내적인 아룸다움이니, 내면의 자존감 수업이니,
뭐 그 외 등등 다양한 심오한 美에 관한 이야기 따위로
다이어트를 폄훼하려는 자들도 많이 있겠지만.
당신도 나도
행복하기 위해 오늘 아침도 눈을 뜬 것이고
내 맘에 들지 않는 몸무게 때문에
기분 망칠 사람은 나 자신이니
어줍잖은 철학적 접근은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정중히 사양한다.
오늘은 이렇게 마구잡이식 분노 표출과 지극히 나만을 위한 위로가 필요하다.
아니 근데
정말 나만 안 빠지는 건가....?
(....뒤끝 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