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특별한 손님

위로를 전하기 위해 파리에 방문한 내 동생

by 삐빕
Pexels에서 luizph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2647097/


SOS!

방학 때 한국에 가야겠다고 엄마한테 말했다. 내가 어떤 상황이고 어떤 마음인지 힘듦을 토로하고 한국에 잠깐 쉬러 가고 병원에도 방문해야겠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엄마는 다른 말은 딱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얘기를 하다가 동생이 마침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라 내가 한국에 돌아가기 직전에 잠시 파리에 와서 같이 여행하고 들어가자는 계획이 나왔다. 어차피 학교도 안 나가고 있는데 학교 일정과 상관없이 들어가서 쉬고 나와도 상관이 없었겠지만, 왜인지 또 학사 일정을 딱 맞춰서 들어갈 계획을 잡았다.


동생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초보 파리지엔느

동생이 놀러 오면 뭘 같이하면 좋을지 생각하면서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버텼던 것 같다. 집에는 1인용 싱글침대 하나밖에 없어서 간이 매트리스도 새로 사서 준비했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마중 가서 오랜만에 동생을 만났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실제로 한 2년 만에 보는 거 기도 했고. 하지만 힘들었던 기간이었던지라 체감으로는 더욱더 긴 시간이 흐른 뒤에 보게 되는 느낌도 있었다.


나름대로 내가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과 동생의 취향을 십분 반영해서 계획을 만들었다. 파리 시내뿐 아니라 외곽을 도는 투어도 신청했다. 한번 가보고 싶다! 생각했던 몽생미셸 투어, 지베르니 방문 등 누군가와 함께 가야 좋은 곳들을 처음으로 가보게 되었다. 동생은 나의 나름의 가이드를 따라 불평 없이 잘 따라다녔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못내 미안한 부분이 있었다. 내가 파리에 사는 동안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한 적이 별로 없어서 소개해줄 만한 식당이 없었던 것이다. 가끔 나가서 먹는다고 해도 일식이나 중식 등을 위주로 먹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온 동생이 만족하기엔 애매했다. 한국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종류의 식사였기 때문에. 그래도 착한 동생은 당시에는 불만 없이 잘 먹었다. 아주 나중에서야 ‘프랑스식을 안 먹고 왜 일본식 우동만 먹인 거야?’라고 웃으면서 물어보는 정도였다. 나름대로 ‘그 집은 지드래곤도 줄 서서 먹는 식당이야'라고 우겨도 별로 통하진 않았다.


존재의 위안

동생이 있는 동안은 많이 웃었다. 일 년 동안 웃을 일 없었던 것을 몰아서 보상받는 것처럼 즐거웠다. 유학오기 전까지 20여 년 간을 같은 집에 쭉 살았지만, 이렇게 붙어있었던 적이 없었다. 각자 학교와 학원에 다니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하다 보면 정작 동생 하고는 하루에 집에서 세네 시간 정도 보는 게 전부였다. 그렇다 해도 보통은 각자 방에서 할 일을 하고, 대화는 오래 한다고 하더라도 한 시간 이상 넘기는 일도 드물었다. 그냥 필요에 의한 몇 가지 말만 섞을 뿐. 이번 동행이 처음으로 동생과 일주일 이상을 내내 붙어있는 경험이었다. 엄청난 대화가 없어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많이 되었다.


돌아보면 그 시기의 나는 내 마음을 지탱하기 위해 ‘원래 알고 지낸 가까운 존재’가 절실했다. 한국에서 늘 함께 했던 사람의 온기를 멀리서 다시 느끼는 것은 내가 그때 얼마나 고립되어 있었는지를 깨닫게 했다. 동생과 함께했던 그 짧은 시간은 나는 전보다 조금은 더 나은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처음 본 동생의 모습

그러다 보니 동생을 인간 대 인간으로 처음 바라보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그냥 철없는 동생, 늘 내가 챙겨줘야 할 어린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파리에서 함께 지내면서 동생이 얼마나 성격이 둥글둥글하고 웃기고, 배려심 많은 사람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나를 따라주고 내가 계획한 대로 불평 없이 움직이면서도 중간중간 재미있는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얘한테 이런 면이 있었구나. 단순히 혈연으로 얽힌 동생이 아니라, 함께 여행하며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알아가는 경험은 내게도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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