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울지 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
우울증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병원을 찾는 이유는 대개 “요즘 피곤하다”거나 “잠을 못 자겠다”는 식의 두리뭉실한 증상이 시작일 때가 많다고. 돌이켜 보면, 나도 다르지 않았다. 과거 리옹에서 어학원 수업을 자주 결석했을 때, 체류증 연장을 위한 ‘델프(DELF) 시험 합격’이라는 긴박한 목표를 만들어내며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렇게 나름의 명분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이번에도 똑같았다. 1학년 동안 잦은 결석을 설명할 수 있는, 그리고 어쩌면 내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는 어떤 ‘증거물’을 얻기 위해 병원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동생과 함께 파리에서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5주간의 짧은 일정이었다. 귀국 후 초반은 그저 좋았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위로가 되었고, 어릴 적 친구들과의 만남은 오랜만에 편안한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어쩌면 나는 정말로 괜찮아졌다고 믿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잊고 지냈다. 3주쯤 지났을 때, 엄마가 “이제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물어왔다. 순간 어딘가 불편한 기분이 스쳤다. 괜찮아진 거 같긴 한데… 한국에 와서 일시적으로 그런 건가? 이 안정이 진짜인지, 막상 병원에 가려니 귀찮아진 스스로를 합리화하려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기도 했고, 일단 앞으로를 대비하기 위한 ‘증거물’ 확보라는 본래의 계획대로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네이버 카페를 뒤져 “괜찮다더라”는 후기와 평점이 높고 집에서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들어섰다. 아늑하게 꾸며진 대기실, 친절한 간호사들의 미소. 하지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거리감 있게 느껴졌다. “정말 나와 관련 있는 공간일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의사 선생님에게 일단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인 내 상황을 설명했다.
“와, 멋있네요.”
그 순간, 그 짧은 한마디가 무너뜨린 것은 단순히 나의 방어막뿐만이 아니었다. 그 말 한마디는 나 자신에게조차 숨겨왔던 고통의 틈새를 깊이 헤집었다. 나는 전혀 멋있지 않았다. 내 하루는 끊임없는 좌절과 불안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예상치 못한 감정의 폭발이었다. 파리에서 그토록 많은 밤을 외로움 속에서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던 내가, 낯선 진료실에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웃으며 “아니에요”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눈물을 추스르고 조금 진정되고 나서 나는 상담은 필요 없고 약만 처방해 달라고 요청했다. 어떻게 힘든 상황인지 설명하고, 상담으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스스로가 내린 결론을 말씀드렸다. 실제로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길게 상담에 매달릴 여유도 없었다. 나는 경미한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 선생님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약물을 처방해 주셨다. 프랑스에 돌아가서도 같은 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신 것이다.
병원은 그 후로 두 번 정도 더 다녀왔다. 가능한 최대한으로 처방받아 약을 잔뜩 들고 가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산뜻했다. '이 약은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될까?', '나를 바꿔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조금 일었지만, 일단은 영문으로 된 진단서를 받았다는 데에 미션 클리어!라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일단 처방받은 약이니 열심히 챙겨 먹었다. 아마 파리에서 그렇게 처방받았으면 챙겨 먹는 루틴조차 지키지 못했을 것 같은데, 그나마 한국에 있어서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