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이 만든 뜻밖의 여유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웃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수업이었다. 과제와 시험을 준비하는 데에 있어 수업은 필수적인 요소였지만, 정작 수업 자체가 내 에너지와 시간을 너무 많이 앗아갔다. 과제와 시험이 모두 수업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긴 했지만,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거웠다. 연강이 두 개만 있어도 집에 와서 누워 쉬어야 할 정도였다. 프랑스어로 낯선 내용을 듣고 이해하려 애쓰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체력이 문제인가 싶어 운동도 틈나는 대로 했지만, 적응하기까지는 오히려 체력을 더 소모하는 것에 불과했다. 강당에서 진행되는 대형 강의는 출석 체크를 하지 않으므로 필기만 구할 수 있다면 굳이 참석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당연히 출석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하루살이 같은 내 체력으로는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당시에는 최선이었다. 문제는 교실에서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세 번 이상 결석하면 점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결석 횟수를 신중하게 조절해야 했다.
그런 나에게 실낱같은 희망은 바로 파업이었다. 프랑스는 파업이 유독 많은 나라이고, 그 중심에는 학생들이 있다. 사회적인 이슈나 새롭게 발표된 법안에 따라 강한 반대 움직임이 일어나며, 대학 또한 정치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 내가 학사 과정을 다닌 대학은 중도적이지만 다소 좌파적인 성향이 있었다. (이후 석사를 한 대학은 극좌파였다.) 파업이 시작되면 좌파 성향의 학생들이 학교 건물을 점거하고 수업을 막았다. 우리 학교는 구조적으로 점거하기 쉬운 편이라 한 번 막히면 손쓸 방법 없이 며칠씩 수업이 취소되곤 했다.
특히 2학기가 시작되고 3월쯤 되면 파업의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연금 개편이나 학생 등록금 문제 등 매년 반복되는 주요 이슈가 있었고, 이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이 봄부터 거세졌다. 몇 년을 겪어보니, 이 시기가 되면 사실상 수업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과제는 학기 초에 배부되므로 파업 여부와 상관없이 제출해야 했고, 기말고사 역시 취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오히려 파업하지 않는 다른 캠퍼스 건물로 이동해 시험을 보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피곤했지만, 수업이 취소되는 정도의 파업은 과제에 집중하고 시험 준비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 시험 범위도 줄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범위가 줄어든 만큼 시험 문제가 더 까다로워지는 단점도 있었지만, 나는 적은 범위가 더 낫다고 생각했다.
우리 학교를 1 지망으로 지원할 때도 이러한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대학에 정치색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으니 찾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들은 바로는 좌파 성향과 우파 성향의 대학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 학교는 시험지에 이름, 학생번호, 학과 등의 개인정보를 가리고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채점 시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별개로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학생을 위해 별도의 체크란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는 채점할 때 시험 내용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언어적 오류를 감안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반면, 우파 성향의 대학에는 이러한 장치가 없었다고 한다.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차별이 가끔 드러나기도 했는데, 한국학 교양 과목을 들었던 한 한국인 학생이 ‘발음’을 이유로 한국어 시험에서 16/20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원어민인데도 말이다.
학사 3학년 때는 미술사·고고학 연구원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당시 우파 성향의 대학의 미술사학과와 같은 건물을 사용했다. 우리 학교는 파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우파 대학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 출입구에서 학생증을 검사하여 우리 학교 학생들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지금 돌이켜보면 꽤 특별한 기억이다.
물론 그 시기에 파업으로 인해 일정이 불확실해지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기도 했으나, 결국 나에게는 과제와 시험을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는 빛과 소금 같은 연례행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계획이 엉클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덕분에 나름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과제와 복습에 할애해서 요긴하게 써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다른 학생들과 함께 프랑스의 시위를 직접 경험해 볼 기회도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은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