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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참패 후, 발레에 빠지다 (그리고 탈출하다)

쉽고 안락하게 교양 수업에서 살아남기

by 삐빕
Anna Shvets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3901639/




멋모르고 선택한 사회학

필수 전공과목 외에도 학기마다 한두 개씩 교양 선택 과목을 들어야 했다. 첫 해에는 '나한테 무조건 도움이 되는 걸 들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철학, 미학, 사회학 같은 이론 수업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철학과 미학은 너무 어려울 것 같아 사회학을 선택했다.


첫 수업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아시아인은 나 혼자였고, 교수는 교재나 PPT 같은 자료 없이 머릿속 지식을 그대로 쏟아냈다. 유명한 사회학자의 이름을 철자조차 불러주지 않고 지나갔는데, 나는 겨우 들어본 적만 있을 뿐 제대로 받아쓰지 못했다. 엉망으로 쓴 Émile Durkheim의 이름을 보고 옆자리 학생이 철자를 바로잡아 주었을 때, 수업을 계속 들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데도 교수님은 단 일주일 만에 내 이름을 외웠고, 그 사실이 더 부담스러웠다. 수업 과제는 한 학기 동안 사회적 주제를 정해 인터뷰와 여론조사를 진행한 후 보고서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부담스러움을 넘어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 경험을 통해 이후 교양 과목을 선택할 때는 더 신중해졌다.


새로운 길, 우아한 선택?

사회학에서의 참패 이후, 일단 통과할 수 있는 과목을 고르기로 했다. 스포츠 관련 과목이 만만해 보였지만, 학점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렇게 리스트를 훑어보다 '무용(danse)' 항목에서 멈췄다. 현대 무용(danse contemporain)은 왠지 불안했다. 돌아가면서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과제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전통 무용(danse classique)을 선택했는데, 첫 수업에서야 그것이 발레라는 걸 깨달았다. 왜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발레와의 첫 만남

첫 수업 날, 온몸에 잔근육이 돋보이는 여성 교수님은 수업 방식과 복장 규정을 설명했다. 최대한 몸에 붙는 타이츠나 레깅스를 입어야 했고, 발레 치마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토슈즈도 구입해야 했다. 난생처음 발레용품 매장 Bloch에 가서 연습용 토슈즈를 샀다.


발레 수업은 다른 스포츠 수업과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몸을 풀고, 기초 체력을 다지는 동작을 연습한 후, 몇 가지 기본 동작을 배우고 음악에 맞춰 그룹으로 연습했다. 맨 앞줄에 서 있던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발레를 했는지, 동작이 완벽에 가까웠다. 그들의 우아한 움직임과 비교해 내 어설픈 몸짓은 더욱 도드라졌다.


이상하게도 아시아인이 거의 없는 수업을 골라서인지, 이번에도 교수님은 내 이름을 빠르게 외웠다. 어학원에서는 그렇게나 내 이름을 불러주길 바랐는데, 대학에 오니 눈에 띄고 싶지 않아도 자꾸 주목을 받았다. 특히 잘하지도 못하면서 튀는 게 민망했다.


1학기는 무사통과, 그러나 공연은 사양입니다.

수업 평가는 출석과 발레 역사에 대한 보고서로 이루어졌다. 몇 번의 민망함만 견디면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2학기에는 작품 하나를 함께 공연한다고 해서 미련 없이 포기했다. 다시 말하지만, 잘했더라면 그런 경험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이후 나는 언어 과목만 들었다. 일본어, 중국어, 이탈리아어, 심지어 라틴어까지. 여러 언어를 '찍먹'하며 교양 학점을 채웠다. '왜 이렇게 많은 언어를 기초만 배웠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내게 교양 수업은 최대한 쉽고 편하게 지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전공 공부만으로도 벅찼기에, 굳이 교양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사실상 토슈즈 값어치도 못하고 끝나버린 발레 수업이지만, 언젠가 취미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때는 더 이상 점수에 연연할 필요 없이 어느 정도 발레 자체를 즐기면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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