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니, 무슨 과가 이렇게 사람을 잡나요!

발표에 치이고, 과제에 눌리고, 시험에 당하다가 터득한 2학년 쿨 패스

by 삐빕
Tara Winstead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8850706/


함께여서 든든했던 학교 생활

서현이와 함께한 1학년은 확실히 이전보다 더 의지가 생겼고, 덕분에 학교생활이 좀 더 수월하게 느껴졌다. 물론 힘든 건 여전했지만 말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이미 수강신청이 끝난 뒤였기 때문에 1학기 때는 아주 일부 수업만 같이 들었다. 하지만 2학기부터는 더 많은 수업을 공유하게 되면서 점점 더 친해졌다. 우리는 매번 강의실 가장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들었고, 그 덕에 노트를 빌리거나 서로의 자료를 공유하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공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익숙하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밥 차려 먹을 시간도 없는 힘든 학사일정

내가 다닌 학교의 점수 시스템은 그야말로 '빡세기로' 유명했다. 한 과목당 세 번의 수행평가와 한 번의 기말고사가 있었다. 수행평가 세 개가 총점의 50%, 학기 말에 치르는 기말고사가 나머지 50%를 차지했다. 수행평가는 현장에서 치르는 시험이기도 하고, 짧은 논문 형식의 글을 제출하거나 발표하는 형식도 있었다. 대부분의 과목이 이 세 가지 방식을 모두 포함했으니, 한 학기당 8-10개의 과목을 들으니까 적게 잡아도 최소 스물네 번의 수행평가가 존재하는 셈이었다. 한 학기 수업은 약 12-13주였으니, 수업 외에는 늘 과제만 하고 있어야 하는 일정이었다. 프랑스인 동기들에 비해 글을 읽고 쓰는 속도가 열 배는 느렸던 나는 밥 차려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였다. 매일 과제와 발표 준비에 매달리다 보니, 기말고사를 미리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크리스마스 휴가나 부활절 휴가에도 프랑스 친구들이 여행이나 고향 방문으로 휴식을 즐길 때, 나는 책상에 앉아 코를 박고 시험 준비를 해야 했다. 파리 전역이 휴가 분위기인 탓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유독 우리 학교만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옆 대학 같은 과의 친구들은 학기말 시험 하나로만 점수를 받는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너무 부러웠다. 학기 중에 조금은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 시스템에 대해 어느 교수님이 해준 말이 인상적이었다. 교수님은 우리 학교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수행평가를 잘 못 보더라도 다른 평가들로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너무 벅차고 힘들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교수님의 말이 점점 이해되기 시작했다.


내가 터득한 ‘생존형 점수 확보 전략’

실제로 나는 학기가 지날수록 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를 터득하게 되었다. 학기말 시험은 현장에서 2-3시간 동안 서술형으로 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내용을 다 알고 있더라도 시간 안에 완벽히 서술하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긴장한 상태로 시험에 들어가면, 내가 가진 모든 지식을 쏟아내도 12점만 나와도 다행인 수준이었다. 어떤 과목은 열심히 준비해도 5점 정도밖에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비해 나는 수행평가에서 미리 최대한 높은 점수를 받아 놓는 전략을 세웠다. 발표나 과제에 최대한 성의를 기울여 15점 가까이의 점수를 확보해야, 기말고사에서 최악의 상황을 만나도 과목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런 노하우를 깨달은 뒤로 2학년은 비교적 수월해졌다. 어디에, 어떻게 에너지를 분산해야 하는지 명확히 파악이 되었다. 그 결과 1학년을 마치는 데 3년이 걸렸던 반면, 2학년은 단 1년 만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최종 성적도 더 좋아졌다.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결국 직접 겪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값진 배움이자 성장의 기회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수영, 프랑스에서 맥주병 탈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