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아파트 옥상 수영장을 향한 나의 도전 욕구
확실히 마음이 안정되니 수업 외적으로 뭔가 하고 싶다는 욕구가 드디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파리에서는 보기 드문 고층 건물이었는데, 옥상에 작은 수영장과 사우나 시설이 있었다. 입주민은 약 30유로를 내면 이용권을 구매할 수 있었고, 프라이빗 시설인 만큼 작아도 거의 혼자 쓸 수 있었다. 나도 그 수영장을 이용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수영장의 수심은 2m였고, 감시 카메라나 경비원이 없었기에, 수영장 옆에는 “수영할 줄 아는 사람만 들어가라”는 빨간 글씨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수영장을 이용하려면 먼저 수영을 배워야 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 같았지만, 그때는 어떻게든 수영장을 이용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집 근처 수영 강습 센터 사이트를 찾아보니 프랑스에서는 대부분 어릴 때부터 수영을 배우기 때문인지 성인을 위한 기초반은 아예 없었다. 센터에 문의했더니 "보통 성인 기초반은 없지만, 9월 학기가 시작되면 확인해 보라"는 답장이 왔다. 없다는 말에 실망하고 그냥 잊고 지냈는데, 개강 시즌에 다시 들어가 보니 성인 기초반이 새로 개설되어 있었다. ‘이거 내가 문의해서 생긴 거구나!’ 하는 생각에 등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위해 만들어진 반 같았으니까.
수업 등록 후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하며 설레기도 했지만, 첫 수업을 앞두고는 너무 떨렸다. 내가 어릴 때 한국에서 잠깐 배운 수영이 전부였고, 그것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개헤엄조차 못 치는 소위 말하는 맥주병이었던 나는, 프랑스어를 잘 못 알아들어도 주변 사람들을 보고 따라 하면 되겠지, 하고 다짐했다. 그러나 첫날부터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수업에 참여한 사람은 나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흑인 소년 단 둘 뿐이었다. 그 아이도 어린이반에는 들어갈 수 없어서 성인반에 들어온 듯했다.
프랑스 수영 강습은 한국과 많이 달랐다. 강사가 물에 들어오지 않고, 물 밖에서 말로만 가르쳤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당황스러웠다. 또, 수영장의 깊이도 달랐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성인 여성의 발이 닿는 깊이였지만, 여기서는 0.8m에서 시작해 레일 끝은 2.7m까지 깊어졌다. 다행히 초급반은 1.4m 깊이까지만 사용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뿐이라 나는 옥상 수영장에서 배운 것을 연습하며 호흡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유튜브에서 수영 강습 영상을 찾아보며 혼자 반복 연습도 했다. 특히 LOVELY SWIMMER 채널의 이현진 님 영상이 큰 도움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평영, 배영, 자유형, 접영 순으로 배우는 점이 흥미로웠다. 한국에서는 자유형부터 배우니까 이런 차이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렇게 개인 연습과 독학으로 어설프게나마 평영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약 세 달이 걸렸다.
그 사이 우리 초급반에는 추가 등록자가 하나둘 조금씩 새로 들어와 대여섯 명으로 늘었다. 보조장비 없이 물에 떠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나는 1.4m 지점이 출발점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진도가 빨라서 깊은 구간을 나 혼자 사용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공간도 너무 여유로웠고 약간의 적응기간이 지나가니 이상하게도 깊은 곳이 얕은 곳보다 더 편했다. 얕은 곳에서는 바닥이 눈앞에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긴장하게 되었다.
수업은 배영과 자유형으로 이어졌다. 배영은 무난하게 지나갔고, 자유형은 호흡이 어려워 끝내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 1년의 등록 기간이 끝나자, 프랑스 수영 강습을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사실 더 이상 등록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챔피언’이라는 별명이었다. 내가 초급반에서 유일하게 혼자 수영을 하게 되었던 터라 붙은 별명이었지만, 민망했다. 재등록하면 벽 쪽 레일이 아닌 한 단계 상급반으로 배정될 것이 확실했고, 그렇게 되면 불안할 것 같았다.
한국에 돌아가면 자유형부터 다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프랑스에서의 첫 수영 도전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파리의 옥상 수영장에서 혼자 깊은 물에 적응하며 물과 가까워진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무엇보다, 수업 외적으로 스스로 뭔가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내 삶과 일상이 학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된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