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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 티켓을 찾아서

서울대학교로 떠나는 교환학생을 향한 도전 그리고...

by 삐빕
LePei Visual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18470534/


교육 시스템의 차이는 단순히 강의실 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학사 1학년 때부터 나는 프랑스 학교 사이트를 자주 들어갔다. 한국 학교의 사이트와 꽤 달라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 디지털 공간조차도 문화적 충돌의 현장이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기능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교환학생 제도였다. 유럽 전역으로 보내주는 에라스뮈스(Erasmus)를 포함해서 미주 대륙으로 보내주는 다른 프로그램도 있었고, 전 세계를 아우르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갤러리에서 일을 하면서 1년을 한국에서 보냈던 나에게, 다시 파리로 돌아가 일 년을 마저 해야 한다는 사실은 꽤나 앞이 깜깜했다. 특히 마지막 학년인 3학년은 세부 전공을 선택하면서 더욱 힘들기도 하고 내용도 상당히 어려워졌다. 나는 고대, 중세, 근대, 현대 시기의 네 가지의 옵션 중 현대미술을 세부 전공으로 확정했고, 이 과정에서는 '토론'과 '미학이론'이라는 함정이 수업 군데군데 숨어있었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이러한 철학적 토론의 세계에서 더욱 높게 느껴졌다.


어느 날도 습관처럼 학교 사이트에 들어가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구경했는데, 내 이목을 끌도록 바뀐 것이 있었다. 바로 미술사학과에서 '서울대학교'로 교환학생을 보내주는 루트가 생긴 것이다. 마치 운명이 내게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를 제시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당장 신청 요건을 찾아보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단순한 학업 경험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한국에서 남은 1년의 과정을 하는 건 나에게 큰 메리트가 있었다. 어차피 학사가 끝나면 한국에 들어갈 생각이니까, 미리 1년 당겨서 짐을 정리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대학의 과정은 졸업 학년이 제일 수업도 까다롭고 어려운데,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서 수업을 들으면 훨씬 적은 수의 '교양'수업으로 학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학비 역시 1/10의 값으로 서울대학교를 다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서 한국어로 수업을 듣는 이 메리트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런 요령을 살짝 숨기고 내 미래에 꼭 필요한 부분인 것처럼 잘 포장해서 자기소개서 및 동기서를 완성했다. '졸업 후에 한국에서 일하고 싶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서 제공하지 않는 동양의 예술 과정을 수강하고 싶습니다.'와 같은 내용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서양 미술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굳이 한국 미술사 수업을 위해 한국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거의 유일한 지원자라고 생각했다.


필요한 서류로는 우리 학교 교수님의 추천서 2 통도 있었다. 나는 세 분의 교수님께 연락을 했다. 아주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목적을 얘기하고 추천서를 부탁드렸다. 두 분은 과목 점수가 좋은 과목의 교수님이었고, 다른 한 분은 나를 좋게 보고 계신 분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점수를 잘 받았던 과목의 교수님 두 분이 추천서를 써주셨다. 다른 한 분은 답장을 주지 않으셨다. 아쉬웠지만 이 경험으로 또 20점 중 15점은 넘어야 추천서를 요청할 수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되었다. 이 작은 좌절은 학문적 성취와 교수와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학생을 보증하는 데에는 분명한 기준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교육 시스템의 차이는 때때로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나는 이 과정에서 여실히 느꼈다. 현지에서 받은 성적증명서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점수도 변환해야 했다. 나는 죽기 살기 매달려서 20점 중 11-12점으로 통과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었고 과목을 통과했음에 그렇게 기뻐하며 지냈었는데, 이 점수를 한국 성적으로 변환하니 평균이 C인 것이다. 와, 말도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동일하게 볼 수 있는 레벨이 아닌데. 참 허망했다. 이는 단순한 점수 변환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교육 문화와 가치 체계의 충돌이었다.


희망과 기대는 때로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모든 서류를 다 준비한 후 기한 안에 무사히 제출했다. 나는 어쩐지 '당연히' 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서울대학교에 다니면 어디서 자취를 할지 동네를 알아보고 있었다. 꿈은 이미 현실이 된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리고 나에겐 정말 충격적 이게도, 떨어졌다.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외국인 학생이 모국으로 신청하는 게 되는지 안 되는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담당자는 일단 그냥 신청해 보라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교환학생을 보내주는 예산 자체가 줄었다는 얘기도 이후에 전해 들었다. 이렇게 조금은 허무하게 나의 '한국으로 돌아가기 첫 번째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떨어진 후 한동안은 그냥 단순히 허탈했다. 준비했던 서류들, 계획했던 서울에서의 생활, 피할 수 있었던 파리에서의 3학년 수업들...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현실적인 아쉬움이 컸다. 특히 파리로 돌아가 마주해야 할 힘든 전공 수업들을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주어진 것을 해낼 수밖에. 이 좌절은 내게 인생의 한 페이지였을 뿐이다. 화려한 깨달음이나 심오한 성찰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냥 지원했고, 떨어졌고, 아쉬웠다. 다음에 기회가 온다면 더 잘 준비하겠지. 그게 전부였다. 때로는 실패가 그저 실패일 뿐, 더 이상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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