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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선물한 예기치 못한 경력 전환

파리 유학생의 어쩌다 한국 갤러리 경험기

by 삐빕
Maria Orlova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4947007/




프랑스식 휴학, 'année de césure'의 도전

정륜이를 따라 한국에 가서 여름을 보낸 후, 개강을 위해 9월에 파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대면 수업을 지속하겠다는 공지를 보내왔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학교의 결정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 강당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감수하며 몇 백 명을 모아놓고 대면수업을 강행한다니? 나는 망설임 없이 한국에 다시 가기로 결정했다.


프랑스에는 한국의 '휴학'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비슷한 것이 '갭이어(année de césure)'인데, 이는 전공 관련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해 일할 곳에서 먼저 계약서에 사인을 받고 정규 학업 과정 중 일시적으로 학업을 중단하는 제도다. 학교마다 조건이 다르지만, 우리 학교는 무조건 전공 관련 일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당시에는 일을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보다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학교 비서실에 상황을 설명하고 문의한 결과, 다행히 année de césure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학생 자격 유지를 위한 급박한 구직활동

9월부터 한국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두 번의 입국으로 각 2주간 총 한 달을 자가격리로 보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가치가 있었다. 11월이 되자 불안함이 찾아왔다. 일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année de césure'를 받고 실제로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인터넷 검색 결과 '학생 자격 박탈'이라는 심각한 제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2학년을 어렵게 통과한 상태에서 학생 자격을 잃을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바로 구인 공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전공 관련 일자리는 대부분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다. 귀찮더라도 서울로 가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백화점 갤러리에서 인력을 구하고 있었다. 즉시 지원서를 제출했다. 1년 계약직이었던 이 일은 나에게 완벽하게 맞는 기회였다. 다른 직원들은 이 일을 마치고 실업급여를 받는 경우가 많아 외국인인 내게는 그 부분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경험을 쌓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두 명의 큐레이터와 면접을 보고 다행히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전시장에서 일하기

업무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전문성을 요구했다. 현장에서 관객을 안내하고, SNS를 관리하며, 이미지를 편집하고, 기자들에게 전시 소개글을 보내는 일까지 맡았다. 전시 중 판매되는 상품이 있으면 물건 관리와 결과 정리도 해야 했으며, 전시가 끝나면 모든 수치를 정리하고 그동안 촬영한 사진들로 발표 자료를 제작하는 일도 담당했다. 세 명의 보조 큐레이터가 로테이션으로 근무하는 시스템이었기에, 우리는 서로 도우며 열심히 일했다.


이 분야에서 처음 일하는 나였지만, 유학 생활에서 몸에 밴 성실함과 열정으로 업무에 임했다. 메인 큐레이터님은 이런 내 태도를 높이 평가하셨는지, 보조 큐레이터로서는 전례 없는 일인 새로운 전시 담당을 맡겨주셨다. 설렘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업무에 임했다. 프랑스에서 배운 방식대로 아티스트에 대한 자료를 철저히 조사했고, 진행 중이던 해당 작가의 다른 전시회도 직접 찾아가 관람했다. 아티스트의 작업실까지 방문하여 대화를 나눌 기회도 가졌는데, 작가는 내가 그의 전시를 찾아가 본 적극성에 특히 좋은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내가 작성한 전시 서문은 메인 큐레이터 선생님의 첨삭을 받으며 계속 수정해 나갔다. 전시 설치 날에는 여러 업체들과 소통하며 정신없이 일했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부딪히며 빠르게 배우고 개선해 나갔다. 이후 다양한 전시를 진행하면서 갤러리 현장 업무의 진정한 재미를 알게 되었다.


예술 전문가로 향하는 진로에 대한 제시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파리로 돌아가기 전, 메인 큐레이터 선생님과 마지막 식사 자리를 가졌다. 선생님은 내 진로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시며 소중한 조언을 해주셨다. "학사를 프랑스에서 했으니 석사는 한국에서 하는 게 좋겠어요. 학·석사를 모두 프랑스에서 하면 한국 예술계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이 말에 깊이 공감했다.


결국 이 경험은 나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두 문화의 차이를 체험하고, 갤러리 현장에서 실무를 경험하면서 내 진로가 더욱 선명해졌다. 3학년을 마치고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밟기로 한 결정은 예술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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