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하녀방, 유일한 행복은 케이크

파리의 지붕 층 작은 공간에서의 고독과 위안

by 삐빕
Vincent Rivaud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2499395/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뒤흔들던 그 시절, 나는 살고 있던 파리 13구 집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학교 근처 13구에서 2학년을 마칠 때까지 지냈지만, 한국에 1년간 머무는 동안 빈 집을 유지할 이유는 없었다. 월세도 아깝고, 무엇보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빈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컸다.


3학년 과정을 위해 파리로 돌아올 때는 새로운 보금자리가 필요했다. 학업을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기에 1년만 살 공간이면 충분했다. 운 좋게도 나보다 먼저 파리에서 학사 과정을 마친 서현이가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집을 비우게 되었다. 서현이가 살던 집주인에게 연락해 내가 바로 이어서 들어가기로 했다. 이 집주인은 한국인 여성만을 세입자로 받아왔는데, 첫 한국인 여성 세입자가 정말 좋은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덕분에 새 세입자를 찾는 번거로움 없이 나를 받아주었고, 나 역시 별 걱정 없이 그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간 내가 살게 된 곳은 파리에서 유명한 '하녀방'이었다. 파리 곳곳을 장식하는 '오스만 양식' 건물의 최상층에 위치한 이 공간은 과거 하인들이 사용하던 방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옥탑방 같은 느낌이랄까. 면적도 아주 작았다. 14제곱미터, 약 4.23평에 불과한 이 공간은 문을 열고 들어가서 세 걸음만 걸으면 창문과 함께 방이 끝날 정도였다. 좁디좁은 이 공간에서 나는 매일 복작복작한 일상을 보냈다.


건물 꼭대기 층이라 계절마다 극명하게 달라지는 이 공간은 나에게 파리의 기후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했다. 여름에는 지붕이 태양열을 고스란히 흡수해 찜통이 되었고, 겨울에는 개별난방인데도 히터를 켜도 추위에 떨었다. 전기 요금을 아끼려 히터 사용을 최소화했는데도, 나중에 400유로라는 충격적인 추가 비용이 청구되었다.


그나마 위안이 됐던 점은 이 건물에 현대식으로 설치된 엘리베이터가 7층 하녀방까지 운행된다는 것이었다. 파리의 많은 오래된 건물들은 6층까지만 엘리베이터가 다니고 마지막 층은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외출 자체가 큰 부담이 되었을 테니, 작디작은 2인용 엘리베이터라도 있다는 것은 일상의 소중한 편의였다.


이 집은 15구에 위치해 있었다. 그동안 익숙했던 13구를 떠나는 첫 경험이었다. 13구는 중국인과 베트남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로, 쌀국수 식당이 즐비했고 대형 아시안 마트와 한국 마트가 있어 식재료를 구하기 편리했다. 타지생활에서 느끼는 향수를 달래기 좋은 환경이었다.


반면 15구는 더 '프랑스다운' 지역이었다. 물론 15구 내에서도 Charles Michel역 쪽은 한국인들이 밀집해 있지만, 내가 살던 Pasteur역 근처는 전형적인 프랑스인 구역이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진짜 프랑스 동네의 분위기를 경험했다. 15구에는 세련된 프랑스식 감성의 가게들과 아늑한 카페들이 많아 색다른 일상을 만끽할 수 있었다.


15구 생활에서 가장 빛나는 기쁨은 집 근처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티세리가 세 곳이나 있다는 점이었다.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É)', '파티세리 시릴 리냑(La Pâtisserie Cyril Lignac)',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데 갸또에 뒤 빵(Des gâteaux et du pain)'에서는 쁘띠 갸또(petit gâteau)라 불리는 정교한 케이크들을 판매했다.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는 '왜 한국의 딸기 생크림케이크 같은 디저트가 없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포레 누아(Forêt-noire) 같은 전통 프랑스 케이크는 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파티세리들을 발견하면서 그런 오해는 완전히 사라졌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맛의 케이크들은 프랑스가 왜 제과의 본고장으로 불리는지 명확히 보여주었다.


더욱 매력적인 점은 이 케이크 가게들이 시즌마다 메뉴를 바꾼다는 것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로운 시즌 메뉴가 나오면, 하나씩 사서 집으로 가져와 하루를 마무리하며 즐겼다. 이 달콤한 순간은 지치고 고단한 유학 생활 속 나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재미있는 건, 후에 다시 13 구로 돌아가 살게 되었지만 그 파티세리들을 다시 찾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멀리까지 가서 케이크를 사고, 메트로의 인파 속에서 조심스럽게 운반해 오는 수고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케이크들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만 의미를 가졌던 15구 주민으로서의 특별한 일상이었던 것 같다. 파리의 옥탑방에서 맛본 달콤함은 외로움과 고독함 속에서 발견한 작지만 큰 행복이었다. 때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그 안에서 찾는 소소한 기쁨이 인생의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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