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처음이자 마지막, 유일한 프랑스인 친구 클레어

파리 학사 3학년에 찾아온 특별한 인연

by 삐빕
Екатерина Мясоед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8555031/


프랑스 학교에 다니면 당연히 프랑스인 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같은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친구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 학교 밖에서 만나 일상을 공유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는 유학 생활 마지막 해인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 명 생겼다.


3학년 1학기, 어떤 조별 모임에서 클레어를 처음 만났다. 당시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만 여겼는데, 2학기에 다른 수업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우리는 그 수업의 4인 조별 과제를 함께 하기로 했고,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다른 두 조원은 발표일이 다가오는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클레어가 직접 만나거나 화상 미팅이라도 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들은 일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다며 계속 거절했다. 나는 내 담당 부분을 완성하기 위해 프랑스어로 글을 쓸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클레어도 그 사정을 이해해 주었다. 조원들에게 이 문제를 얘기했지만, 다른 두 명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했다.


결국 클레어와 나는 먼저 과제를 시작했고, 그러자 다른 두 사람은 왜 마음대로 진행하냐며 따져 물었다. 하루아침에 조별 과제 단톡방에는 100개가 넘는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읽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그들은 심지어 클레어에게 "너 1학년 때부터 맘에 안 들었어. 너 별로라고 소문났어."라는 황당한 말까지 했다. 아, 대학생활의 조별 과제는 어디서나 똑같구나 싶었다.


나도 이 '채팅 전투'에 합류해 클레어 편을 들어주었다. 결국 우리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각자 알아서 준비하자'는 상태가 되었다. 이때 클레어는 의외로 나를 먼저 걱정해 주었다. 나는 이미 그 수업을 포기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클레어는 "저 둘이 어떻게 하든 우리끼리 진행하자"라고 제안했다. 나는 오히려 클레어가 나를 제외하고 다른 두 사람과 함께 하는 게 그녀에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그녀의 제안이 무척 고마웠다.


결국 마지막에는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았고 넷이서 발표를 무사히 마쳤다. 나는 상대적으로 쉬운 파트를 맡았고, 클레어는 그 두 명의 압박으로 어렵고 부담스러운 파트를 맡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공동의 적'을 마주했던 조별 과제를 계기로 클레어와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하루는 수업에서 일찍 빠져나가려고 출입문 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클레어가 내 옆자리에 앉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끝까지 들어야 했다. 이미 수업에는 관심이 없었던 나는 대신 클레어에게 그녀의 이름을 한글로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클레어도 갑자기 한글에 흥미를 보이며 인터넷에서 알파벳을 찾아 자음과 모음을 따라 쓰면서 수업 시간을 보냈다.


수업 후에는 우리가 멀지 않은 거리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함께 집으로 걸어갔다. 클레어는 정말 좋은 친구였지만, 그렇게 긴 시간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것은 솔직히 꽤 피곤했다. 장시간의 불어 대화에 지친 나는 귀가 직전 떨어진 당을 끌어올리기 위해 케이크를 한 조각 사야만 했다.


그 이후 우리는 종종 만나 저녁 식사도 함께 하고, 시험 기간에는 도서관도 함께 갔다. 한 번은 너무 늦게 가서 도서관에 자리가 없어 결국 스터디카페로 향했던 적도 있다. 서로의 집에 초대해 요리도 해주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학기와 기말고사가 모두 끝난 후, 나는 클레어의 고향인 루앙(Rouen)에 놀러 갔다. 클레어는 대학 입학 전까지 살았고 가족들이 아직도 살고 있는 자기 도시를 기쁘게 소개해주었다. "여기서 우리가 잔다르크를 불태웠어!"라며 역사적 사실을 유머러스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날은 마침 2학기 성적이 발표되는 날이었고, 우리는 루앙의 거리 한복판에서 3학년 통과 사실을 확인하고 함께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클레어는 이후 그대로 미술사학으로 석사 과정에 진학했고, 네덜란드 미술을 주요 전공으로 선택하면서 교환학생으로도 떠나 즐겁게 지내는 것 같다. 같은 어려움과 고난을 함께 겪었던 한국 친구들과의 시간도 물론 소중했지만, 내 유일한 프랑스인 친구 클레어와의 추억은 파리 유학 생활의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파리의 하녀방, 유일한 행복은 케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