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행의 좌절과 인생의 갈림길
인생의 계획은 때로 예상치 못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랑스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가 미술사학 석사 과정을 밟겠다는 단단한 결심으로 나는 미래를 그려왔다. 그 확신에 찬 목표 아래, 프랑스에서의 어떤 가능성도 더 이상 고려하지 않았다.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며 귀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2학기 기말고사가 급박하게 다가오면서 면접이나 입학시험을 위한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려웠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면서, 나는 전략을 수정했다. 여러 대학원에 지원하기보다 일단 '맛보기'로 홍익대학교만 지원해 보기로 했다. 합격하면 다행이고, 불합격이라면 한국에 돌아가 더 충분히 준비한 후 다른 대학들에도 지원해 볼 생각이었다.
파리의 기말고사와 서울의 면접 일정 사이, 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정을 마주했다. 5월 18일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23일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8일 토요일 홍익대 면접을 치르고, 바로 그다음 월요일에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초압축 일정이었다. 역대급으로 짧은 일주일간의 한국 체류.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에 빠른 귀국 준비를 위해 파리로 서둘러 돌아가야 했기에 더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
면접 당일, 혹시 늦을까 걱정되어 인천에서 서울까지 서둘러 도착했다. 낯선 캠퍼스의 세련된 건물 안에서 면접실을 찾아 헤매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지원자들로 북적이는 대기실이었다. 인기 교수가 있는 학과다 보니 경쟁률도 높았다. 수험번호 순서대로 불려 가는 가운데, 나는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을 그저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사실 이 대기 시간부터 이미 마음이 불편했다. 후반부 면접자들에게는 차라리 늦게 오라고 안내하는 것이 더 배려 있지 않았을까? 매년 이런 면접을 진행해 왔다면 시간 배분에 대한 데이터가 있을 텐데, 긴장과 초조함 속에 기력을 소진한 채로 면접을 맞이해야 하는 시스템이 못내 아쉬웠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고 면접실로 들어섰다. 세 명의 심사위원이 앉아 있었다. 간단한 자기소개 후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설명했지만, 주 담당 교수는 곧바로 내 주제가 '너무 마이너 하다'며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메이저 한 내용을 잘 알기 때문에 마이너로 넘어가는 거냐"는 질문과 함께 그 시대에 대한 지식을 시험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답변했지만, 교수는 계속해서 틀렸다고 지적했다. 흥미롭게도, 이후 프랑스 미술사 전문가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는 내 답변이 틀리지 않았다는 반응을 얻었다. 물론 면접 자리에서 이런 생각을 드러낼 수는 없었고, 나는 그저 순응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단 3분. 그 짧은 면접 시간 동안 나는 명확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곳에서는 내 관점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없겠구나.' 대기 시간에 비해 허무할 정도로 짧았던 면접이었지만, 오히려 그 순간이 내게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면접이 끝나길 기다리던 서현이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내 경험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더 잘 준비해서 다시 도전해야지'라고 생각했던 내 계획은 완전히 뒤바뀌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짧고 당혹스러웠던 면접 경험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나는 그 경험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한다. 때로는 실패처럼 보이는 경험이 더 큰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그 면접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게 맞지 않는 환경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미술사에 대한 나의 관점과 열정은 변함없지만, 그것을 펼칠 곳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급박하게 다녀온, 그리고 비행기값이 아까울 정도로 짧았던 한국 방문의 결과는 그저 슬픈 불합격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열린 문이었다. 때로는 계획의 실패가 우리를 더 좋은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파리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이미 다른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