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도시 가이드라는 일, 그리고 그 속의 나
여행 가이드를 해보겠다고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던 이전의 시도는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 결국 무산되었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다시 한번 가이드라는 일에 도전장을 내밀게 되었다.
석사 1학년 논문을 위해 다시 1년을 투자하던 중, 진전되지 않는 논문보다는 다른 일들에 더 마음이 쏠리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다른 가능성들을 떠올리게 되었지만, 주변 친구들이 종종 하던 통역 아르바이트에는 좀처럼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행사 때마다 관련 내용을 별도로 공부해야 했고 현장에서의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대신 나에게 조금 더 맞을 것 같은 가이드 일을 다시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앞서 말했듯, 미술관처럼 실내 공간에서의 가이드는 당시에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내가 눈을 돌린 곳은 파리 시내를 걷는 워킹 투어였다. 지원서를 낸 후 한동안 연락이 없어 포기하려던 차에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곧 면접 일정이 잡히고 파리 투어 팀장님과 한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면접이라기보다는 서로를 소개하고,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을 듣는 자리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팀장님은 내가 처음 건넨 인사 한마디만 듣고 이미 마음속으로 ‘합격’을 결정하셨다고 했다.
나는 미술 외에는 파리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가이드를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된 정보가 참 많았다. 파리의 역사, 문화, 영화, 뮤지컬까지. 처음엔 낯설었지만 몇 번 투어를 진행하면서 점차 내용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걸으면서 말하는 것’에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걸음 속도를 조절해야 했고, 정해진 구간 안에서 설명을 끝내야 했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을 챙기며 동시에 말해야 했다. 긴장으로 인해 숨이 차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오히려 내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고 더 긴장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팀장님의 큰 기대 속에 시작했지만 현장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연습해도 막상 출근 시간만 되면 심박수가 120을 넘나들었고 긴장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서울 본사에서 오신 임원분께 ‘특훈’까지 받으며 조금씩 일을 익혀갔고, 팀장님은 ‘그냥 둬도 잘할 사람’이라며 끝까지 나를 믿어주셨다. 나 역시 하루라도 빨리 자리를 잡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다행히 여러 번 일을 거듭하면서 시간이 흐르며 긴장도 조금씩 풀렸고 처음보다는 한결 안정된 모습으로 투어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여유가 생기고 나니, 이제는 ‘나는 어떤 가이드인가’에 대한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공부를 겸해 다른 가이드들의 투어를 따라다니다 보니, 모두가 저마다의 개성과 스타일을 살려 투어를 운영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어딘가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떤 셀링포인트로 나만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 이 고민은 처음으로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다른 일정들 때문에 중간중간 몇 차례 쉬는 시기도 있었지만, 가이드 일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하게 되었다. 그만뒀다가 다시 돌아올 때마다 한층 더 성장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왔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파리를 떠나면서 일을 그만두기 직전이었다. 모든 일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되고, 또 아쉬움이 남았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말의 무게, 사람들과의 호흡을 새롭게 배우게 되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순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 누군가에게 낯선 도시의 기억을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었고 큰 책임과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스스로를 시험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 또 그 안에서 작지만 확실한 자신감을 쌓아가는 여정. 이 값진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음에 마음 깊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