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흙수저 스펙으로

5년간 외국계 회사에서 살아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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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국계 부동산 투자회사에 다닌 적이 있다. 외국에서 학위를 딴 것도 아니고 해외에서 길게 유학을 가본 경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계 회사를 잘 다녔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누구나 다 알만한 프로젝트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IFC Seoul의 자산관리자로서 일을 했다. 그리고 부동산 자산관리에 관한 책을 몇 권 출간하기도 했다.


너무나도 평범한 내가 어떻게 이 곳에서 일하게 되었고 책도 쓰게 되었는지 가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곤 한다. 그래도 혹시 다른 나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내가 지나온 길들을 공유해 보려고 한다.


특별하지도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평범한 사람도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짧은 글을 통해 나와 같은 고민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단편적으로는 영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떻게 보면 자기계발에 대한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계속 진행형이다. 어제 부족했던 것을 오늘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스스로 크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를 다니며 부족한 시간에 그런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꾸준히 노력을 하는 게 정답이다. 그래서 지금껏 내가 겪은 작은 경험을 공유하고 스스로 동기부여도 하고 싶다.


나의 슬픈 흙수저 스펙


처음 부동산 업계를 알고 호기심에 지원했을 때는 정말 무모했다. 그 당시 나는 지금으로 말하는 소위 흙수저 스펙이었다. 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말하자면 그 정도로 크게 내세울 만한 게 없었다. 처음 취업을 위해 지원한 곳은 부동산 관련 회사였는데 나의 전공은 국제통상이었다. 말이 좋아 국제통상학과이지 그냥 무역학과였다. 그렇다고 학점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졸업 학점은 열심히 계절학기를 통해 메운 3.4점인 평범한 점수였다. 그렇게 열심히 다녔는데 점수가 그 모양인데 다 이유가 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연속으로 3번이나 학사 경고를 받으며 바닥 수준 밑을 맴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매일 나갔으나 수업에 들어가는 날이 적었을 뿐이다.


그렇게 별게 없는 상황이었지만 무역영어, 국제무역사, MOUS 자격증, 토익 865점 등 안간힘을 써서 뭐라도 이력서에 써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자기소개서도 성심 성의껏 저의 성실함을 강조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찾게 된 부동산 자산관리 회사의 구직광고를 보게 되었고 이런 신기한 직업도 있구나 하고 무작정 지원을 했다.


그리고는 운 좋게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2명을 뽑는 자리에 10명의 면접자들 중에서 당당하게 비전공자 2명이 합격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부동산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중에 왜 내가 뽑혔는지 담당자분께 여쭤 봤다. 부동산 회사에는 부동산 전공자들이 많은데 이 번에 신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비전공자인 내가 운 좋게 합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부동산업계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외국계 회사에 들어가는 법


회사에 입사하고 내가 담당한 프로젝트는 외국계 부동산 펀드가 투자한 전국의 38개 부동산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외국계 회사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갑'이 펀드를 운영하는 외국계 회사였고 나는 국내 회사 소속의 '을'이었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데 저 사람들은 나보다 더 좋은 환경과 연봉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때 마음속에 변화가 일었다. 나도 언젠가는 외국계 회사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게 '외국계 회사에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외국계 회사에 들어가야겠다고 다짐을 했고 그 생각이 마음 한편에 계속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게 한 결심이 결국 내가 외국계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던 시작점이었다.


그 뒤로 몇 년 뒤 이직을 해서 부동산 자산운용사에서 근무를 하던 와중에 외국계 회사에 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곳은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IFC를 운영하는 외국계 부동산 투자 회사였다. 처음에는 내가 외국계 회사에 갈 수 있는 영어 실력일까 하고 고사를 했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차례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IFC 프로젝트에 합류를 하게 되었다.




점수가 아닌 진짜 영어 공부


입사를 하고 나서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사장님도 외국인이고 팀을 담당하는 전무님도 외국인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영어를 해야 하는 환경이 된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문서나 대부분의 이메일은 영어로 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 당시 외국계 회사 사람들의 상징처럼 갖고 다닌다는 블랙베리 핸드폰을 받았지만 실시간으로 날아오는 이메일 읽기도 바빴지 여유를 즐길만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 생각을 했다. 실전 영어가 필요하다. 토익 점수는 정말 아무 소용이 없구나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고 나서 최대한 영어에 나를 노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부러 검색 사이트도 Yahoo나 Google 같은 해외 사이트로 해놓기도 하고 영문 웹사이트에 자주 접속했다. 물론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익숙해지려고 노력을 했다. 눈에 익어야 영어로 된 문서나 이메일을 신속하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어 듣기도 많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출퇴근 시 듣던 인기 가요 모음인 '멜론 100' 도 과감하게 끊었다. 영어 오디오북이나 영어 팟 캐스트를 듣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이 왕복 2시간인데 그 시간에 뭐라도 들으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나는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면서 책을 보는데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적당히 소음 차단도 되고 영어를 배경음처럼 생각하게 돼서 나중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지금도 이런 습관은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방법도 지나고 나니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우선 영어의 속도에 적응을 하는데 좋은 방법이었다. 무엇보다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훨씬 덜했다. 그냥 익숙해졌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다.




외국계 회사에 있어보니


또 하나 외국계 회사에 있다 보니 영어를 무조건 해야 하는 때가 반드시 생긴다. 직원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어서 평소에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때가 더 많기는 하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부서의 전무님은 매주 월요일 아침에 팀원들과 함께 금주에 해야 할 일을 함께 공유하는 회의를 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업무와 계획을 팀원들과 공유하는 게 목적의 회의다. 물론 영어로 해야 했다. 이렇게 매주 영어를 조금이라도 해야 하다 보니 조금 더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주 하게 되었다. 물론 생각만큼 실천을 하지는 못했지만 국내 회사에 다니는 사람보다는 좀 더 노력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말 그대로 매주 동기부여가 됐다.


외국계 회사에 있어보니 영어를 아주 잘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 분들을 잘 살펴보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거나 본업에 있어서 확실한 무기를 가지신 실력자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영어만 잘한다고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게 아니구나 라는 것을 그때 실감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문법이나 발음은 말도 안 되는데 충분히 역량을 발휘하면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어 실력은 조금 미흡했지만 언제나 당당하게 업무를 하고 계셨다. 영어는 단지 수단이지 업무를 하는데 궁극적 목적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적응하게 되어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외국계 회사에 있었던 5년 동안 저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영어 이메일 쓰기가 너무 어려웠고 대화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정말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직접 확인했다. 처음에 영어가 두려워서 이직 제안을 거절했다면 지금의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가장 좋은 동기 부여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환경에 처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도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영어를 쓰면서 보내야 했기 때문에 큰 동기부여가 되고 알게 모르고 성장할 수 있었다. 누구나 다 닥치면 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나는 부동산 업계에 후배분들이 여러 가지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외국계 회사를 직업 선택에서 제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다 들어가기만 한다면 업무를 할 수 있고 죽으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그런 환경에 나를 시험에 보는 것도 한 번쯤은 경험해 볼만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돈 주고 영어 학원도 다니는데 외국계 회사를 영어 학원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회사에서 영어 공부도 시켜 준다고 여기면서 다녀 보는 것이다. 그렇게 부동산 회사에서 비전공자이면서 유학도 다녀오지 못한 나는 남들보다 좀 더 큰 동기부여와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남들보다 부족하니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나중에는 스스로에게 만족을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점차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영어책도 출판해 봤다.


외국계 회사에서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은 영어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나같이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영어에 대한 갈증과 열등감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학습에 대한 열망도 컸다. 부동산 업무를 하다 보니 관련 전문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국내 부동산 서적 중에는 부동산 영어에 대한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는 책이 없었다. 그래서 업무에서 사용하던 전문 용어들을 정리해서 부동산 용어 관련 책도 출판을 해봤다.


영어도 원어민 수준이 아니고 부동산 비전공자가 어떻게 그런 책을 썼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정말 필요한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다. 앞서 말했듯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책도 준비하고 부동산 영어 공부도 함께 하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원어민이 아닌 나는 책의 감수가 필요했다. 운이 좋았는지 나느 우연히 알게 된 외국인 친구로부터 도움까지 받아 영어책을 무사히 출간할 수 있었다.




■ '그냥 한 번 해보자.'로 시작한 일들


앞서 말한 나의 경험들은 잘 살펴보면 모든 게 '그냥 한 번 해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에서부터 출발을 했다. 생각한 것을 죽이 되는 밥이 되는 하다 보니 여러 가지 길이 보였고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들도 잘 풀어 나갈 수 있었다.


마음만 먹고 있거나 나중에 준비가 되면 해봐야지 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언젠가 될지 기약할 수 없다. 만약 여러분들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그냥 한 번 뭐라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작은 실행 습관들이 모이면 자신에게 변화가 분명히 일어날 수 있다.


결국 내가 흙수저 스펙으로 5년간 외국계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작은 실행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일들은 현실 속에서 이뤄보기 위해 조금씩 실천을 해나가고 있다. 꼭 거창하고 큰일이 아니어도 좋다. 여러분들도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작은 계획을 세우고 바로 실행해 보는 작은 성공 습관을 만들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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