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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언영 May 12. 2021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한 시대가 지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면서 차츰 우리 주위를 변하게 하나 보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언제나 연락하면 없는 자리 따로 내어 본인은 늦게 퇴근하더라도 바로 오라고 할 것 같았는데...


아이들과 나의 주치의가 4월 1일부터 은퇴한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작은 아이 손목이 아파 찾은 진료 대기실에서 다른 환자 손님에게 들은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의사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이를 물어보니 67살이라고 한다. 거의 20년 동안 알고 지낸 사람 나이를 이제야 알았다. 그는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아이들 어린 시절부터 찾았던 의사 선생님이다. 큰 아이 9살 때 원인 모를 통증으로 고생할 때, 그리고 작은 아이가 폐렴을 앓을 때도... 


그는 아이들을 위해 토끼나 양 같은 동물 문양의 도장을 만들어 진료가 끝나고 나면 ‘뭐 할래?’ 하면서 아이들 손등에 찍어주곤 했다. 작은 아이는 이 도장 찍힘을 꽤 좋아했다.  


프랑스의 전형적인 고지식한 의사 선생님이다. 언젠가 의료 보험에 문제가 있을 때 다시 진료서를 만들어 주면서 보험청에 보내라고 한 적이 있었다. 환자가 보험 혜택 없이 진료를 받는 건 있을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은퇴 소식을 듣고 미루어놓았던 피검사를 받았고, 결과를 들고 오늘 갔다. 한국에서 사 온 조그마한 선물을 하나 가지고 갔다.


그는 필요한 것들을 일러주고는 ‘이제 끝이네요’라고 한다. 이에 나는 '더 이상 못 뵙겠네요' 하며 선물을 건넸고, 그는 한국 선물을 좋아했다. 


아버지가 떠났고,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우리 주치의 선생님도 떠난다. 영원한 건 없는 이 세상인데 살다 보니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모든 것들은 사라지기도, 변화기도 하며, 또 나아가기도 한다. 


비가 억수 같이 쏟아졌던 오늘 오후, 떠난 아버지 생각에, 곧 의사직을 그만 둘 주치의 하며, 그렇게 내 주위가 변하는 게 좀 슬퍼졌다. 그런데 감상에 젖어 있기보다는 빨리 다른 주치의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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