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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그라피 Sep 28. 2020

유튜브에서 만난 사회적 동물

#코로나시대 #가이드로 살아남기  

글쓰기를 피했다. 


6월 이후 모니터 앞에 앉아 글을 쓰려 하면 수많은 생각이 좌로 우로 스쳐 갔다. 

써 내려간 글을 첫 번째 편집장인 아내에게 보여주면 늘 감상평은 순화되어 돌아왔지만, 내 기분은 고약한 데스크 장이 집어던진 서류에 얼굴을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점점 생각만 많아지고 글을 쓸 자신도 없어졌다. 싸우고 미안하다는 말을 제때 하지 못해 멀어진 어색한 관계처럼, 브런치를 한쪽에 밀어두고 제대로 마주 볼 수 없었다. 


글쓰기는 한 사람의 내면을 들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하 작가님이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글을 써보면 내가 얼마나 모자란 지를 느낀다"고. 

매일 쓰는 일기장에도 내 생각이나 감정은 쓰지 못하고 겨우 일과를 나열하기만 몇 달째. 문득, 자존감이 한참 떨어져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아내, 동료 부부와 함께 유튜브에 집중하느라 글쓰기를 미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나는 그냥, 글쓰기가 두려워졌다.




며칠 전, 바스티유 광장에서 보주 광장까지 걸으며 잠깐 유튜브로 라이브 방송을 했다. 

서른 명의 접속자에게 내가 사랑하는 파리를 소개했다. 그 속에는 나와의 여행을 추억하고 반겨주는 분들도, 내가 소개하는 파리를 처음 만나는 분도 계셨다. 

기분이 좋았다. 

진행하는 내내 '살아 있다'는 기분이 느껴졌다. 

돈을 받고 했던 일도 아니고 얼굴을 마주하고 그분들의 눈을 보며 설명해 드린 것도 아니었다. 

그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나로서의 나', '가이드로서의 나' 그 자체에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아내가 그리 신나냐며 웃었다. 


내가 사회적 동물임을 다시금 느끼는 기분이 들었다. 

표현 방법을 모를 정도로 감사했다. 어서 일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솟았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걸은 거리를 계산해보니 파리에서 서울, 다시 서울에서 파리로 걸어올 만큼의 거리였다. 그렇게까지 걷고 또 걸었는데, 여행자들과 걸었던 파리와 프랑스가 여전히 그립다. 물론 나는 지금도 프랑스, 파리에 있지만 '함께'인 파리는 아니니까. 

여행자들을 다시 만난다면, 물론 나는 늘 진심이었지만, 지금까지 보다도 더 진심의 진심으로 길잡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나를 사로잡았다. 


다신 생각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지난 5월 말부터 9월 말까지 넉 달간, 우리 부부는 파리비디오노트 채널에 보여 드리고 싶은 파리를 일상에 녹여 잔잔하게 vlog로, 알려드리고 싶은 파리 이야기는 빠담빠담이라는 콘텐츠로 담아왔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유튜브를 하고('유튜브 하다'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편집 기술과 콘텐츠가 이미 넘쳐나는 그 세계에서 과연 누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줄까? 싶었는데

잔잔한 영상에 녹여냈던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던 기자님이 경향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인터뷰 기사를 실어주셨다. 기자님과 이메일로,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하며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를 알려보고 싶은 용기가 생겼고, 기사가 난 후, 가족과 지인들, 예전에 함께 여행했던 여행자들에게도 연락이 왔다. 


세상이 엄청 넓다지만, 우리의 솔직한 마음이 닿을 수 있는 곳에는 닿는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다짐하게 된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더 할 수 있는 것도 찾아야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존감을 살려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


여행자가 없다면 가이드도 없다. 

그렇다면 여행자가 없는 지금, 가이드도 없어져야 할까? 


아니. 

나는 내 직업과 내 자리를 지켜내고 싶다. 


왼쪽부터 : 실시간 파리 소개 유튜브 라이브 중 /  마레지구  / 파리비디오노트와 빠가쀼 다이어리이 빠담빠담 촬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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