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현재 프랑스 현지에 거주하며,
와인과 관련된 업종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노자입니다.
관련 학업을 이 곳에서 마치고 직장을 구해 격동의 코로나 시기를 거쳐
지금껏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신상을 밝히고 싶지는 않아 자세한 설명이 힘든 것은 양해바랍니다.)
와인의 나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에 사는만큼
도처에 양질의 정보가 넘쳐나는 점은 아주 즐겁고 만족스럽습니다.
다만 미천한 일개미의 머리로는 그 다양한 정보들을
항상 스쳐가듯 짧은 메모로만 기억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완벽하게 받아들이고 흡수하지 못하던 점이 못내 항상 아쉬웠던 터라,
이번 기회에 찬찬히 정리도 할 겸 많은 분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려 합니다.
(프랑스식 발음은 빌캬흐 쌀몽에 가깝습니다.)
고즈넉한 Mareuil-sur-Aÿ 마을 한 켠에 위치해 있던 Billecart-Salmon에서는 그간 성공적이었던 그들의 역사를 보여주듯 새로운 시설들의 신축공사가 한참이었습니다. 실제로 Salmon 가(家)가 거주하는 오래된 자택과 정원, 그리고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들의 조화가 꽤나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양조 시설, 밭, 꺄브 등 마을 한 구석이 마치 Billecart-Salmon 왕국처럼 느껴지는 곳곳을 누비며 투어가 진행되었습니다.
Billecart-Salmon은 1818년, 한 부부의 결합과 함께 탄생한 샴페인 하우스입니다. Nicolas François Billecart와 Elisabeth Salmon은 Epernay의 근방에 위치한 작은 마을 Mareuil-sur-Aÿ에 직접 샴페인 하우스를 건립하고 생산을 시작합니다. 이전에 소개드렸던 사위가 타이틀을 차지해버린 Henri Giraud와는 다르게, 사이좋게 두 가문의 성을 동시에 하우스 이름에 올린 셈입니다. 당시 열정적인 양조자였던 Elisabeth의 동생 Louis의 조력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샹파뉴 지역의 훌륭한 Maison Familiale (가족 경영) 하우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Billecart-Salmon은 연간 대략 200만 병을 생산하고 있으며, 대략 300 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샴페인 하우스인 모엣 샹동의 재배 규모가 1200헥타르임에 (최근에도 계속 매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고 합니다.) 비추어보면 큰 규모의 생산자로 분류되기는 어렵습니다.
Billecart-Salmon은 샴페인 양조에 있어 클래식한 품종(cépage), 피노누아, 샤르도네, 뫼니에만 사용하며,
12-13도의 낮은 온도에서만 발효를 진행합니다. (Fermentation basse température) 이러한 저온 안정화 양조기법의 창시자인 Billecart-Salmon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신선한 과실향을 좀 더 보존하고 섬세한 맛과 향을 극대화합니다. 또한 발효 및 숙성 과정은 포도 품종과 포도밭 구획에 따라 별도로 진행될 정도로 섬세한 맛의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Billecart-Salmon 메종의 주요 가치로는 네 가지를 꼽는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로 자연, 즉 좋은 포도(Bon raisin)를 꼽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양조하는 사람, 즉 숙련된 인력이고, 세 번째가 떼루아(Terroir) 와 시간입니다. 와인의 맛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의 숙성 기간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가 양조 방식입니다. (La méthode de la vinification)
처음에 중요한 네 가지의 가치들 각각의 중요도에 대한 우문에 굳이 순서를 꼽자면 위와 같지만 덜 중요한 가치가 어디 있겠냐는 현답을 듣고는 조금 머쓱하기도 했습니다..:P
발효가 진행중인 이녹스 탱크들입니다. 숙성은 이녹스 탱크에서 하지 않고 오크통에서 진행을 합니다.
양조 시설을 둘러본 후 이 하우스의 가장 고급 퀴베인 Le Clos Saint-Hilaire 양조에 사용되는 포도밭을 방문하였습니다. (밭 이름 역시 퀴베명과 같았습니다.) 이 구획은 1964년까지만 해도 가족의 텃밭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증명하듯 담장을 따라서는 실제로도 식용으로 사용하는 토마토, 호박, 타임, 쪽파 등의 다양한 채소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밭의 한 켠에서는 판매용은 아니지만 가족이나 주변에 나눠주는 꿀을 얻기 위해 양봉을 하는 공간도 있었습니다.
보통 포도밭의 탁 트인 초록빛 벌판을 보면 감탄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이 구획만큼은 규모 자체는 소박했지만이웃 밭에 뿌려지는 농약, 제초제 등 각종 화학물질까지 막기 위한 담장이 둘러져 있었을 정도로 관리가 각별했습니다. 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물쇠가 달린 철문을 통과했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여담으로 포도밭의 땅값이 얼마인지 조금은 엉뚱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구획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평균적으로 대략 3000평에 가까운 1 헥타르가 백만 유로, 한화로 약 14억에 달한다고 합니다.
토양은 샹파뉴 지방의 특징적인 백악질 토양이며 Biodynamique 재배 농법을 사용합니다. 지속가능한 양조(La vinification durable)을 위한 그들의 노력이 엿보였습니다.
밭을 둘러보며 싱그러운 풀내음을 맡은 후에는 저장고로 향했습니다. 위의 사진과 같은 시설의 꺄브가 2km에 이를 정도의 규모로 있다고 합니다. 숙성을 위해서는 새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으며 평균적으로 15년 정도 사용합니다. 병입 후 숙성은 NV (NM,Non-millésimé)의 경우 3년 더 숙성 후 출시합니다. Nicolas François 퀴베같은 경우에는 현재 출시된 빈티지가 2008년으로, 보통 퀴베당 15년 숙성 후에야 출시를 합니다. 그리고 도자쥬 (Dosage)의 설명을 할 때에는 재밌는 비유를 들었는데, 직원 본인은 화장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습니다. 필수적인 과정은 아니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좀 더 하고, 덜어내고 싶으면 덜어낸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Côte de Blancs의 네 개의 그랑크뤼 밭 Avize 아비즈, Chouilly 슈이, Cramant 크라망, Mesnil-sur-Oger 메닐 쉬르 오제에서 재배된 샤르도네로 만들어집니다. 도자쥬(dosage)는 3.90g/L, Extra Brut로 분류됩니다. 코에서는 아몬드와 헤이즐넛 등 견과류의 향이 느껴졌으며, 흰 복숭아 향 역시 조금 느껴졌습니다. (Fruit à chair blanche) 입에서는 크리미한 질감과 브리오슈 향이 스치는 잔잔한 탄산감, 약간의 미네랄 등이 느껴졌습니다.
처음엔 시트러스 등의 깨끗하고 순수한 산미가 느껴져 개인적으로는 평범한 블랑 드 블랑의 느낌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열대과일, 꿀향이 나는 듯 엄청 아로마틱하게 바뀌는 재밌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향이 깊고 풍성하게 바뀌긴 했지만 우아한 산미 역시 돋보였습니다.
캐비어 등의 해산물을 함께 곁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블랑드블랑이지만 산미만 돋보이기보다는 브리오슈나 견과류의 향도 느껴지는 스타일이라 구운 생선과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이 퀴베는 하우스의 첫번째 꺄브 책임자 (Chef de cave)에 대한 오마쥬로 만들어졌으며, Mesnil-sur-Oger, Chouilly, 그리고 Cramant의 그랑크뤼 밭에서 재배된 샤르도네로 양조 됩니다.
도자쥬(dosage)는 3.75g/L, Extra Brut로 분류됩니다.
코에서는 헤이즐넛 향이 스치면서 유자, 감귤 등의 시트러스 향과 미라벨, 아카시아 꿀 등의 향긋하고 섬세하면서도 굉장히 풍성한 향이 느껴졌습니다. 입에서도 산뜻한 산미를 보여주면서도 리치한 느낌이 인상적이었고 크리미한 텍스처가 느껴졌습니다. 끝에는 카다멈과 망고 향 등 이국적인 향도 스쳤고, 아로마틱하면서도 굉장히 긴 여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늘하늘하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순수하면서도 강렬한, 정말 잘 만든 우아한 블랑 드 블랑 이라고 느꼈습니다. 페어링으로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송아지 흉선 요리(ris de veau), 크림소스를 곁들인 관자요리 등과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1964년 하우스의 창립자에 대한 오마쥬로 만들어진 이 퀴베는 하우스의 노하우를 집약한 샴페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별한 해에만 양조가 됩니다. 그랑크뤼 및 프르미에 크뤼 밭의 제일 좋은 구획에서 재배된 포도로 양조를 하는데, 피노 누아는 Vallée de la Marne과 Montagne de Reims에서 오고, 샤르도네는 Côte de Blancs에서 옵니다.
양조비율은 피노 누아 60%, 샤르도네 40% 입니다.
피노 누아는 Aÿ, Verzenay, 그리고 Mareuil-sur-Aÿ 에서 재배된 포도를 사용했으며, 샤르도네의 경우엔 Côte de Blancs의 Mesnil-sur-Oger, Chouilly, 그리고 Cramant 에서 재배됐습니다. 83%의 그랑크뤼, 17%의 프르미에 크뤼 밭의 포도를 사용했습니다. 2008년은 일조량과 서늘함의 균형이 잘 맞았던 아주 좋은 해였습니다.
도자쥬(dosage)는 2.90g/L, Extra Brut로 분류됩니다.
도자쥬 비율이 낮아서 그런지 아직 엄청 어린 듯 했는데, 마치 사춘기 10대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25-30년 정도 보관해도 될 만한 산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코에서는 복합적인 아로마와 동시에 신선함도 느껴집니다.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과실향과 볶은 아몬드 같은 견과류 향과 감귤 껍질, 그리고 아카시아와 같은 풍성한 느낌의 흰꽃 향, 장미향 등 꽃 향기도 느껴졌습니다. 입에서는 모과 향, 상큼한 산딸기 등 산뜻한 과실향과
꿀로 코팅된 비스킷, 무화과 등 달콤한 뉘앙스, 살짝 스치는 아니스와 감초 향 등이 느껴졌습니다.
끝맛은 살짝 오키한 향이 스치며 구운 빵과 베르가못 등으로 이어지는 섬세함을 보여줬고, 놀라울 정도로 긴 여운을 보여줬습니다.
상큼함과 묵직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만큼 버터와 레몬을 넣은 생선요리나 뫼니에르 방식으로 요리한 가자미 등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Billecart-Salmon은 업계 종사자 이외의 일반인의 방문은 받고 있지 않습니다. 투어의 말미에서 이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신들의 철학이나 양조 과정 등 자세한 스토리를 듣기보다는 단지 테이스팅 만을 목적으로 하는 방문들과는 가치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괜히 흠칫하기도 했습니다..:P
하지만 포도밭의 나무도 자세히 살펴보는 등 상세한 설명과 해설을 돌이켜 보았을 때 충분히 납득이 가는 설명 이었습니다. 물론 대중적인 홍보도 오늘날 하우스의 발전에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종사자들의 하우스 스토리나 양조에 관한 좀 더 심도있는 이해를 통해 단순한 마케팅에 그치지 않고 그들만의 가치관을 잘 전달하려는 의도에 수긍이 갔습니다. 투어를 경험한 모든 이들이 곧 Billecart-Salmon의 앰배서더라는 직원의 말에 이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투어 내내 일방적인 설명보다는 소비자이기도 한 방문객의 의견이나 견해도 묻는 등 폭넓은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좀 더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순히 Billecart-Salmon이나 샴페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와인이라는 카테고리 전체를 관통하는 흥미로웠던 직원의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 공유합니다.
남편과 좋은 기념일에 마시려고 올빈 Billecart-Salmon 한 병을 마련했는데, 막상 아끼다보니 시음을 자꾸 미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경험하지 못한 팬데믹이 덮쳤고 집에만 갇혀있는 나날들이 지속되던 어느 날, 불현듯 그래! 마시자! 라는 생각에 떨리는 마음으로 오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샴페인은 식초와 같은 냄새가 나는 등 사람으로 치면 거의 사망 상태였고, 아무런 감동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미련과 함께 요리하는 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와인이더라도 특별한 날을 굳이 기다리며 손꼽기 보다는 그저 행복한 하루하루 중 적당한 시기에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를 즐겁게 나눴습니다.
개인적으로 불어로 학업 과정을 마치고 현업도 프랑스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관련 용어의 사용 있어서 대응하는 한국말이나 영어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최대한 감안해서 기록했지만 혹시나 틀린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혹 궁금한 점이 있으면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