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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새댁 Nov 03. 2020

루브르와 친구가 되었다

매일같이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법

 파리 살이 반년차가 될 무렵 나는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어학원을 가는 것도, 프랑스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제법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던 파리의 일상도 지내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남는 시간이 꽤 되었는데 가만히 앉아 보내기엔 아까웠다. 파리에 사는 동안 내가 누릴  있는 혜택이 뭐가 있을까?



루브르 박물관 입구, 피라미드

루브르와 친구가 되다. 


 일 년 내내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가듯 루브르에 갈 수 있다면?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루브르 박물관에 매일 갈 수 있다는 것. 그래, 이런 게 파리살이의 특권이지!


 Ami du Louvre

루브르의 친구가 되는 법? 루브르 연간권 Ami du Louvre에 가입하면 된다. 가입한 시점으로 1년 동안 루브르가 열려있는 시간이라면 언제든 갈 수 있고, 매달 루브르에서 발행하는 잡지 한 권도 우편으로 보내준다.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친구, 잊을 법하면 연락을 주는 친구처럼 루브르는 나에게 파리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입장료는 성인 1인 15유로로 다소 비싼 편이다. 아무리 하루 내내 루브르에 있더라도 모든 작품을 보는 것은 무리. Ami du Louvre의 가입비는 성인 1인 80유로, 2 인용은 120유로. 만약 파리에서 살거나, 혹은 한 달 살이 중에 일주일 혹은 마음껏 루브르를 갈 계획이 있다면 추천한다. 또 유럽 국가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입장료가 무료이니 참고하자.
https://www.amisdulouvre.fr/adherer-renouveler



파리의 가을
루브르 안에서 바라본 피라미드 풍경


  루브르 박물관은 본래 루브르 성이었다. 현재는 ㄷ자 형태의 건물로 60600 평방미터의 어마어마한 면적 안에 무려 약 40만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아득히 멀고 먼 고대부터 19세기까지의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박물관. 루브르에 들어가는 순간, 과거의 어느 날로 로그인하는 기분이다. 이런 루브르는 하루 종일 보더라도 모든 작품을 다 감상하기는 사실 불가능하다. 쉴리 관, 드농 관, 리슐리외 관. 이렇게 세 개의 관으로 나뉘는데 하나의 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5-7시간은 걸린다. 그래서 보통은 가장 유명한 작품을 보고 나오는 것으로 마무리하지만 그러기엔 루브르에 보석 같은 작품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세 개의 작품은 꼭 봐야 한다. 이 작품들 주변으로는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 감상보다는 유명한 작품을 본 것으로 의의를 두게 된다. 기대했던 감동은 느끼기 어렵다는 게 현실, 하지만 나는 루브르와 친구가 된 덕에 그 대단한 작품들을 수십 번이고 볼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앞 광장

  친구와 카페에 들러 수다를 떨고 집에 돌아가는 길, 잠시 루브르에 들렀다 가는 날도 많았다. 그런 날이면 진정 파리지엔느의 삶을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파리의 첫 해, 나의 일상 속에 루브르가 함께할 수 있었던 것.


 작품보다 사람이 많다고 느껴지는 루브르에도 제법 한가한 시간대가 있다. 늦은 오후와 야간 개장을 하는 날이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시간대에 방문하면 루브르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루브르의 작품들이 뿜어내는 웅장한 분위기에 압도되는 기분. 이집트 유물 앞에서는 마치 내가 어느 피라미드 안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그리스 로마 시대 유물 앞에서는 책에서만 읽던 상상 속 장소들이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진 느낌. 무엇보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과거 그 어느 시점에 열과 성을 다 했을 작가의 숨결을 미약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는 것이 나를 설레게 했다.




 워낙 방대한 면적의 루브르에서 발길이 닿는 대로 가다 보면 미로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걷다 보면 선물처럼 느껴지는 멋진 장소에 도착한다. 나에겐 나폴레옹 3세의 아파트가 그랬고, 남편에겐 함무라비 법전이 그랬다. 요즘처럼 쌀쌀한 공기, 파리가 쓸쓸해지는 계절에는 남편과 함께 반짝이는 센강 위 퐁 데 자르를 건너 루브르에 가서 작품을 보고 돌아오는 것. 우리 부부가 파리의 낭만을 지켜내는 방법 중 하나였다.  



함무라비 법전
나폴레옹 3세 아파트

 나는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평소 미술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편도 아니었다. 그래서 루브르에 갈 때마다 더 순수하게 그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알고 싶어 지는 작품들은 찾아보고 공부한 뒤에 다시 가서 작품을 보곤 했다. 작품에 대해 더 알고 난 뒤, 작품을 볼 때의 짜릿함. 보물 찾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저녁 시간대에 가면 관광객들보다는 파리지앵들이 더 많이 보인다. 세계적인 박물관이기에 낮에는 손님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밤이 되면 현지인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들은 박물관 안에서 스케치를 하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유심히 작품을 보기도 한다. 또 여러 명이 한데 모여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공부도 한다. 그런 파리지앵의 모습은 부자연스러운 데가 하나도 없었다. 아주 절친한 친구 집에 가서 다리 쭉 뻗고 노는 듯 편안한 모습. 박물관에 가서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나에겐 새롭고 신선한 모습이었다.  



스케치하는 학생들

 솔직히 말하면 365일, 모든 날 루브르를 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100번 넘게 루브르를 가보니 거의 모든 루브르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가끔은 인적이 드문 방에 갔다 오싹한 기분도 들기도 했다. 실제로 이집트 관에는 미라가 있었던 관들도 전시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요리조리 루브르를 다녔더니 지금도 눈을 감고 떠올리면 루브르 안의 길과 수많은 작품들, 루브르의 공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루브르에만 가면 또 다른 도시,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빛나는 루브르 박물관 야경

 프랑스인들의 루브르에 대한 사랑과 집념은 대단하다. 2차 세계대전 전쟁 중에도 작품을 지켜낸 일화가 유명한데 지극정성으로 작품들을 지켜냈다. 내가 파리에 머물던 해에도 여름에 홍수가 났었는데 가장 먼저 들리던 소식이 루브르 박물관이 문을 닫고 작품을 지키고자 관리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약탈을 통해 작품을 채워 넣었다는 오명이 있지만, 실내 온도 20도와 습도 50퍼센트를 유지하며 작품들을 목숨처럼 관리하는 그들의 모습은 감명적이다. 그 덕분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나의 파리 생활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파리에서 사귄 나의 소중한 친구, 루브르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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