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길이 안 가본 길보다 더 무섭다고 제가 걸어간 '라디오의 길'은 여전히 무섭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라디오 작가 되기' 매거진을 채워 갔지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과연 내가 자격이 있을까? 내가 한 이야기들이 정답일까? 이런 마음이 북받쳐 잠시 중단했습니다. 허나 오리무중인 산길에 누군가 걸어놓은 노란 리본이 이정표가 되듯 제 어쭙잖은 글도 그러할 때가 있으리라 믿고 올해가 가기 전 '라디오 작가 되기' 남은 꼭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돌탑이 지닌 간절함을 배워서요
2. 나를 찾는 여행하기
올 한 해도 지리산 절친이 시절을 모르고 사는 저를 위해 참 많은 풍경을 담아 시시때때로 저를 깨웠습니다. 저 혼자 잘 익어간 농염한 풍경을 받아 들 때마다 '나도 저 산처럼 저 바다처럼 저 들처럼 제대로 철들고 싶다'는 꿈을 꿨습니다. 아직도 천방지축 고삐 풀린 망아지여서 마흔 넘은 제 자식들이 제 걱정을 놓지 못하니 철드는 것도 에미 노릇이라는 생각에 저를 찾아서 나서보렵니다. 갈 곳은 이미 정해놨습니다. 벗이 보내준 풍경 속으로 뛰어들기로요. 지리산 화엄사 가는 길 마지막 단풍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날 화엄사를 가보려고요
오래전, 마흔 초반에 틈만 나면 달려갔던 지리산 화엄사 길. 이 길은 여전한데 저는 많이 낡았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반복해 걸으면서 제게 묻고 답해보려고요. 그리고 힘이 좀 남으면 <원균>의 삶을 추적해보려고 합니다. 임진왜란 후 이덕형, 이항복, 이원익 등 조선조 명재상의 엄격한 심사 끝에 선무 일등공신으로 책록 된 인물이 어찌하여 45년이 지난 후 석연치 않은 역사의 수정 행위 끝에 치욕과 무능의 화신으로 기록되었는지 진짜 궁금하거든요. 혹시라도 후세 사람의 붓끝에 주살(誅殺)된 건 아닐지 원균의 입장에서 당시로 들어가 보려고요.
전남 보성군 오봉산 칼바위랍니다. 칼바위 만추가 아름다워 혼자 보기 아깝다고 절친이 보냈는데요. 저 칼바위 움푹 파인 곳에 원효대사의 모습이 음각되어 있답니다. 저를 찾는 여행길에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다 싶어여행 목록에 넣었습니다. 원효대사한테 하고 싶은 일을 털어놓고 같이 이뤄보자고 꼬셔볼 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