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파뿌리
머리가 젖었을 때 가르마를 손으로 대충 쓱쓱 넘겨서 이리저리 타다 보면
가르마 사이로 2~4cm 정도의 흰머리가 빼꼼 보일 때가 있다.
새싹처럼 툭 튀어나온 그 흰머리를 쏙- 뽑을 때면 나는 왠지 모를 쾌감과 안도감이 생긴다.
어느 순간 나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그 쾌감 때문인지 가르마 사이로 보이는 흰머리 한 가닥을 쥐 잡듯이 찾는다. (얼굴은 안 보고 정수리만 본다.)
9년 전, 회사 여자 화장실 조명이 유난히도 좋았는데
그곳에서 처음 내 흰머리를 발견했을 때 그 속상함이란 마치 나라 잃은 느낌이 아니었나 싶다.(이뤄둔 것도 없이 나는 이제 꺾이는구나!)
그것을 당장 없애야 했고, 뽑아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진짜 흰머리인지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짧은 손톱 끝의 기를 모아서 그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의 흰머리를 뽑으려고 거울 앞에서 얼굴 시뻘겋도록 애를 썼지만 옆에 있던 멀쩡한 긴 머리가 뽑히거나, 목표한 녀석은 약 오르게 고사리처럼 도르륵 말릴 뿐 절대 뽑혀나가지는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할 때쯤 화장실로 막 들어온 젊고 젊은 직원에게 좀 봐달라고 했던 것 같다. (하필이면 나보다 띠동갑 정도로 어리고 예쁜 동료 직원에게)
'이거 흰머리 맞아?'
입을 손으로 가리며 까르르 웃던 그녀의 표정이 생각난다.
'네. 맞는데요~! 꺄르르르!'
그 이후로 한동안 흰머리는 보이지 않았고
몇 년 후에 유사한 자리에 반년에 한번, 분기에 한두 번씩 자라기 시작했다.
이제는 조명이 좋은 등 밑에 설 때면 머리 가르마 사이로 삐져나온
하얀 새싹이 없는지 이리저리 들쳐본다.
다들 뽑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뽑을 때의 묘한 시원함과 쾌감은 나쁘지가 않다.
나는 나이 듦을 기다리지 않지만, 때론 이 표식을 찾는다.
언젠가는 아름답게 백발이 되길 기대해 본다.
아름답게 자라는 나이 듦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기를 나에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