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절 남편과 밤새 나누던 통화는 끝을 내지 못하고 아침을 맞은 적이 많았다. 나는 그 끝에서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일종의 ASMR처럼 들으며 편안한 잠을 잤다. 이제는 그 소리를 매일 옆에서 듣고 있는데, 조용하고 일정한 비트의 코 고는 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리지만 간혹 균일하지 않거나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소리는 가슴을 졸이게 만든다. 어쨌든 나는 그 코코는 소리가 대체적으로 싫지 않고 내가 잠이 들면 소리나 인기척에 둔감한 편인데, 남편은 반대로 다른 사람의 인기척이나 소리에 예민해서 억울할 때가 가끔 있다.
난 남편이 잠든 후에 옆에서 부스럭거릴 때가 많은데,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가지고 글을 쓴다. 이런 소리와 빛에 남편은 간혹 아주 잠을 깨서 시계 한 번 쳐다보고 뭘 하는지 나를 넘겨다보며 물어본다.
간혹 휴대폰으로 SNS를 뒤적일 때는 어서 자라고 다그치지만, 컴퓨터로 글을 쓰는 시늉을 하고 있으면 무얼 쓰고 있는지 물어보며 관심을 갖는다. 그럴 때면, 인터넷 검색을 하는 척하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글을 쓰던 화면을 닫아버린다.
사실 컴퓨터는 남편이 글을 쓰라며 독려 차원에서 사준 컴퓨터였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고된 회사일과 유산 등으로 이러저러 삶의 아픔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밤이나 새벽에 일어나 의식의 흐름대로 내 마음의 글을 써 내려갔다. 그 행위들이 꽤나 마음 챙김에 도움이 되었다고 어렸을 적에 꿈처럼 글을 좀 더 자주 쓰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은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도 모르고 응원 차원에서 컴퓨터를 사줬다.(남편의 수많은 편지 속에서 본인에게 답장 편지 한 장 제대로 쓰지 않던 내가 글을 쓴다고 하니 의아해하기도 했다.)
누군가 나를 아는 사람이 내 글을 본다는 것은 부끄럽다. 특히 글을 쓰라고 컴퓨터를 사준 남편에게 글을 보여줬다가는 사준 물건을 회수할까 봐 더욱더 도둑질하듯 몰래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만일 글로 좋은 일이 생기면 남편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다.
최근에 우리 방에는 코 고는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 내 옆에서 남편과 똑같이 생긴 두 달 된 아기가 새근새근 코를 곤다. 아기의 코 고는 소리는 내 옆에서 잘 살아있음을 알리는 편안한 신호였고, 그 소리는 우습게도 귀여워서 듣기가 좋다. 남편은 본인의 코 고는 소리에 아기가 잠을 못 잘까 걱정을 했었는데 예민한 두 남자가 나를 사이에 두고 규칙적이고 고른 코를 골며 잘 잔다. 육아 노동에 고된 하루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