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믿음, 같은 마음
둘 이 먹는 저녁에 남편은 평소보다 삼겹살을 더 구웠다. 거의 1kg 정도 되어 보였는데 오늘 시장에는 많지 않은 양이라고 하면서 번지르르하고 노르스름하게 구운 삼겹살을 식탁에 올렸다. 수저를 들고 우리는 곧 돌아오는 아이의 백일잔치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밥 한 번, 고기 한 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수저를 내려놓게 하였다.
"엄마가 그... 삼신상 차리라고 하시던데?"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이야기 같았다. 나는 정색을 하면서 되물었다.
"고사상 차려놓고... 그런 걸 하라고? 난 못해. 끔찍해!"
사실 나도 정확하게 모르고 그저 먼저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내뱉었다. 특정 시간, 특정 방위에 아이를 눕혀놓고 고사상을 차리고 절을 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 무당이 치르는 굿에 아이를 참여시키는 것 같아서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남편은 본인도 정확하게 모르지만 그게 그렇게 정색할 일이냐며 되물었다. 아마 시어머니의 의도에 기분 나쁠 정도로 정색한 나의 태도를 보고 얹잖은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집 한가운데에 있는 성모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런 거에 기도하는 거랑 뭐가 다른데?"
나는 결혼 후에 날라리 천주교 신자가 되었지만 조부모부터 내려온 모태 신앙이고, 성당은 여전히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시댁은 종교가 불교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무속신앙에 가깝다. 남편은 종교가 없다. 남편은 연애 때에 부모님을 설득시킬 수 있으니 성당에서 결혼하자고 하고 주말마다 예식을 올릴 예쁜 성당을 함께 찾아다녔었다. 나는 결혼에 대한 로망은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내 결혼은 성당에서 치르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성당 결혼식에 대해 시댁은 결사반대를 했고, 남편은 설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남편은 말수가 적어 시시콜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아마 내가 끝까지 우겼다면 결혼을 못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결국 성당도 절도 아닌 곳에서 결혼식을 했다. 그때 나는 철없게도 내 결혼식에 대해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결혼이라는 제도로 들어가는 끔찍한 전쟁의 서막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온갖 생떼를 다 부렸다.
연애와 결혼 생활을 하는 6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지만, 막연하게 아기가 생기면 무조건 싸울 것으로 나는 예상은 했다. 그러나, 믿음의 문제로 싸우게 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 평소에 남편은 나의 믿음에 관여를 하지 않았고, 나는 나의 믿음을 남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이 욱하며 뱉은 나의 믿음에 대한 공격은 그동안 침묵 속에 있었던 터라 더욱더 모욕적이었다.
'저런 거라니...'
평소에 어떠한 표현도 하지 않았던 남편이 나의 믿음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믿음이 없는 본인에게는 어떠한 믿음이든 그 행위는 모두 똑같이 비추어진다고 이야기했다. 그 순간 나는 분해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남편은 식욕이 떨어졌다는 듯 본인이 먹던 밥이며 음식을 싱크대에 부었다. 5분 전까지만 해도 시장하다며 고기를 열심히 구워 냈던 남편은 단식과 침묵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음식을 버리는 것이 가장 화가 나는 나도 십여 분간 분한 마음을 누르다가 그 투쟁에 동참했다. 남편은 놀란 눈치였다. 식탁엔 수북이 쌓인 삼겹살만 남아 식어가고 있었다. 고기까지는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내 식사만 싱크대에 붓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난 밥 다 먹었으니, 알아서 치워."
결국 그날의 음식은 우리의 다툼으로 모두 쓰레기통으로 부어졌다. 어차피 식사를 해봤자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겠지만, 남편에게 받은 종교 모욕과 그 많은 음식을 버린 것에 대해 화가 식혀지지가 않는 저녁이었다.
나의 믿음의 표식인 성모상은 우리 집 입구에서 잘 보이는 중앙 콘솔에 모신다. 나의 바람에 대한 남편의 배려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시댁에서 집에 방문하실 때면 나의 믿음의 표징들은 집에서 안 보이게 모두 치운다. 그 행위를 할 때면 의도적인 배교 행위 같아서 속으로 죄짓는 기분을 겪는다. 그래도 이 방법이 남편의 배려에 대한 내 최소한의 예의이고 성모님도 이해해 주시겠지 내 맘대로 생각했다. 이번 다툼이 있으면서 남편과는 이틀간 불편한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시댁 어르신이 요청하신 삼신상은 결국은 아이를 이뻐하는 마음에서 나온 거라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지만, 남편에게는 화가 나고 속상한 마음은 다스리기가 어려웠다. 남편도 나에게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침묵을 지키는 것 같았다. 우리의 싸움은 셋째 날 서로의 아무런 해명도 없이 해제되었다. 말을 안 하고 있으니 불편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라 침묵을 풀었지만 서로 사과는 하지 않았다. 화장실 갔다가 뒤처리 안 하고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결혼은 했지만 각자 살 던 두 사람이 아이가 생기고 백일도 안되어 싸움을 했다. 이렇게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거구나. 나의 믿음과 나의 가정을 어떻게 현명하게 이어갈지 어려운 일이었다. 내 믿음은 괜찮은 걸까.
*삼신상: 아기의 백일날에 삼신할미에게 아기의 건강한 성장을 감사하는 기도 의식. 삼신 상징 숫자 '3'으로 밥, 국, 나물 등의 음식을 세 그릇씩 준비한다. 음식은 자시(23~01) 만들고 차린다. 차린 상을 두고 아기의 머리는 동쪽 또는 북쪽에 상은 아기 발에 두고 삼신할미에게 축문 및 절을 한 다음 아이를 잠깐 두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