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100일 동안 동굴 속에서 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을 먹으면 인간이 되게 해 주겠다는 그 약속이 있다. 곰은 잘 버텨서 삼칠일(21일)만에 웅녀가 되어 단군을 낳았다.
나는 쑥과 마늘만 먹고 있지는 않지만 80일째 집에서 불을 켜지 않고 갓난아이와 살고 있다. 그동안 육아 선배들은 백일의 기적을 기다리라고 선물 같은 조언을 많이 해줬다. 사실 나는 우리 아이의 100일의 기적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
돌아보니 백일이 되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멍하기만 하다. 낮에도 환하지 않은 집안에서 내 체력의 한계와 싸우면서 반복되는 삶을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올 때가 있다. 가장 힘든 것은 내 살림 실력이나 육아 능력이 계속 '제자리'라는 것이다. 손목 보호대를 하고 매일 돌려야 하는 청소기, 매일 나오는 빨래, 아기 밥 때나 내 밥 때는 왜 이리 자주 오는지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또 밥 때다. 집 안일은 해도 해도 티도 안 나면서 왜 끝이 나지 않는 것인지 아무리 해도 시간적 효율이 나지도 않고 괴롭다. 어디 집안일뿐이랴. 아기를 두 달 넘게 보고 있는데 아이와 팀워크가 좋지 못한 건지 결국엔 울리고 그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허둥될 때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좋은 엄마가 안 되는 것 같아 또 괴롭다. 이렇게 계속 제자리인 시간을 보내다 보면 우습게도 눈물이 소리를 내며 터져 나온다.
추운 겨울에 아기를 무 뽑듯이 뽑아낸 이후에 꽃비가 내리는 봄이 왔는데 좋아하는 꽃을 보러 갈 기력이 나지 않는다. (아기를 내려놓을 시간이 허락되면 침대에 눕는 것이 더 살 길이다.) 100일이라는 마일드 스톤은 동양권에서는 다양한 부분에서 인내의 시간, 축하와 기쁨의 잔치다. 아이는 이미 생존의 기적을 보여줬으니 나는 아이의 100일의 기적보다 나의 100일의 기적을 더 기다린다. 환인이 나에겐 삼칠일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오는 100일에는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는 기적이 오기 바란다.
� 백일의 기적
생후 100일 무렵에 아기가 보이는 긍정적인 변화들을 통칭.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많은 부모들이 “아기가 달라졌어요!”라고 느끼게 된다.
l 아이의 변화
수면- 밤잠이 조금 더 길어지고, 낮밤 구분이 생기기 시작함
수유 간격- 수유 텀이 늘어나고, 규칙적인 패턴이 잡히기 시작함
성장 발달- 고개를 가누기 시작하고, 표정이 풍부해짐
사회성 발달- 웃음을 지으며 부모를 인식하고, 소리에 반응함
울음 감소- 이유 없이 우는 시간이 줄어들고, 울음이 의미를 가지기 시작함
l 부모 입장에서의 의미
혼란스러웠던 육아에 리듬이 생기기 시작
신생아기에서 영아기로 넘어가는 전환점
“내가 하는 육아가 맞는 걸까?” 하는 고민이 조금씩 줄어드는 시기
* (정정) 그전에 육아 선배들이 구체적으로 아이의 '백일의 기적'을 제시하지 않았는데 찾아보니 아이의 '백일의 기적'은 성장으로서 꽤 훌륭한 지표들이니 엄마도 아이도 같이 '백일의 기적'을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