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생활 (D+ 144)
"나도 담배나 피울까 봐."
무릎 위에 아기를 앉혀 주고 담배를 피우러 나갈 채비를 하는 남편 뒤통수에 대고 나는 퉁명스러운 말을 던졌다. 젖병 설거지를 끝내고 자리에 막 앉은 찰나였다. 비꼬는 말이었지만 정말 담배 피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 해방감과 휴식.
"돌려 말하지 말고, 차라리 끊으라고 해."
남편은 반격했다. 보통은 얼굴 표정을 굳힐 뿐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남편이었는데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내 금연 잔소리가 순수하지 않은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나는 생각지 못한 붙임에 더 이상 반격할 수 없었다. 그때 안고 있던 아이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말을 이어 붙였다가는 싸움이 날 것 같았다. 서러운 눈물을 참느라 아이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끊었으면 좋겠어.'
남편의 흡연 습관과 타이밍을 잘 알고 있다.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가끔은 아기를 안고 있느라 화장실도 제때 갈 수 없는 나에겐 그 끊을 수 없는 습관이 사치같이 느껴져 약이 잔뜩 올랐다. 남편의 흡연을 처음부터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 작은 종이빨대를 태우는 시간은 꽤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시댁에 방문할 때면 종종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담배를 끊으란 잔소리를 하라고 하시곤 했는데, 건강 문제없으면 그 즐거운 흡연을 방해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같이 살다 보니 금연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건강 상의 문제였다. 남편의 높은 혈압 문제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배를 탄 남편이 나보다는 오래 살아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섞여있었다. 몇 년 뒤 임신과 출산을 겪는 동안에는 태어날 아이와 노령 산모를 위해서 유니콘 같은 여타의 남편들처럼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의 전자담배는 면죄부처럼 거론되었다. '연초를 태우는 것은 아니잖아.' 담배는 사랑을 이겼다. 담배를 더 사랑할 수도. (비아냥 거리는 것을 이해해 주시길.)
어쨌든 이번에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었던 나의 금연 요구는 앞서 열거한 나름 순순한 이유가 아니라 끝없는 육아로 인해 내 몸과 마음이 지쳐서 내뱉은 신경질이었다. '지금 나도 힘들어 쓰러질 것 같은데, 손 떼고 담배 피우러 나간다고?'
우리는 한 팀이다. 그런 팀이 2인 1조로 조정 실전 경기를 치르는데 노를 내려놓고 갑자기 흡연을 하고 있는 모습과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비약이 심했나?)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주말만이라도 온전히 쉬고 싶은 내 마음은 너무 욕심이었을까.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싸울 일이 많아지는 것은 몸과 마음이 지치기 때문이다.
출산 직후에는 전쟁을 치른 내 몸을 바라보는 것이 고달팠고, 육아 초반에는 아이 돌봄이 너무 막막했으며,
한 계절이 지나고 보니 이 끝이 없는 경주에서 쉴 자리를 발견하지 못하여 숨이 찼다.
(주 5일 근무에 익숙했던 내가 주말 없이 밤낮없이 4달째 일하고 있다.)
완벽을 자랑하던 남편의 흠이 보이기 시작했다. 팔불출처럼 생각했던 내 남편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물이 들듯이 서서히 서운함으로 바뀌고 있다. '그대도 힘들겠지.'라는 생각을 108번 해본다.
결혼은 의존이 아닌 독립을 바탕으로 한 결합이다. 서로에게 기대나 요구를 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부라고 알고 있지만 육아는 또 다른 문제가 아니던가. 그냥 바라는 것을 포기하고 각자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마저 들었다. (남편을 가끔 와서 집안일 도와주는 옆집 아저씨로 생각하고 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싸울 일이 많아졌다. 육아가 시작되니 내 시간도 부부의 시간도 없어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대화하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육아퇴근 후에 늦은 밤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무작정 나갔다. 가출 주부는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집 앞 옛 단골 술집에 자리 예약을 해두고, 슈퍼로 가서 남편이 좋아하는 커다란 수박을 20분째 고르고 있다. 나는 가끔 담배 피우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