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고 지듯이
내 생애 지난겨울은 참 아름다웠다. 출근길의 마지막 코스인 강변북로를 빠져나오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눈 덮인 겨울나무가 찬란하게 반겨 주었다. 놀랍게도 나는 겨울도, 겨울의 눈도 (눈 오는 출근길도) 정말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황홀감에 푹 젖어 감사함에 눈물을 흘리면서 출근길을 맞이하곤 했다. 그 길이 그렇게 행복했던 이유는 아이를 만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였고, 그 아름다운 겨울나무를 보는 순간에 뱃속의 아이와 함께해서이기도 했다.
내 시계는 그 겨울에 멈춰있었다. 벌써 겨울이 지나 봄이 왔고 여름의 문턱에 서있었다. 지난 1월에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 꽤 오랜 시간 동안 아기와 함께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옷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스티브잡스처럼 똑같은 옷을 3개 사서 번갈아 입었다. 외투를 입고 벗지 않았기 때문에 계절이 바뀌는지 모르고 겨울을 살아냈다. 그리고 오랜만에 집을 나설 때에 마주한 계절 변화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벌써 여름이 오고 있다니!...'
아기가 태어나는 날로부터 출산휴가가 시작되어 90일을 다 썼다.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3.45kg으로 태어난 아기는 두 배 이상이나 자신의 몸을 키웠다. 아기가 태어난 지 60일이 되었을 때 임신 후 최대의 난제였던 '회사를 계속 다닐지, 육아휴직을 쓸지, 쓰면 얼마나 쓸지.'에 대해서 엉성하게 매듭을 지었다. (회사에 복귀 일정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 회사를 관두는 것은 당장 불안하므로 복귀할 것.
- 아기의 100일은 넘길 것. (그러나 100일도 너무 어린 아기.)
- 육아휴직까지 붙이고 1년을 넘겼을 때 자리 보존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그전에 출근할 것.
위와 같은 전제를 두고 9월에 복귀하는 것으로 회사에 알렸다. 그 사이에 친정 근처로 이사도 하고 동면에 들어갔었던 몸도 슬슬 깨우려고 했다. 그렇게 회사에 복직을 알리고 두 달이 더 흘렀다. 회사의 일을 할 때나 생소한 음식을 먹을 때나 찍었던 휴대폰의 사진첩은 두 달 동안 매일의 아기 사진으로 가득 찼다. 아기는 매일매일 무럭무럭 크고 있었다. 매 순간 아름다운 꽃이 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변하는 아기의 지난 사진을 발견한 순간 회사를 복직하는 것이 맞는 결정이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다시 들었다. '이렇게 작은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것이 맞을까.' '나는 한 번밖에 없을 이 아이의 꽃피는 모든 순간을 놓치게 될까.' 아기의 모든 순간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의 2025년은 지난겨울 1월에 멈췄다. 구태연한 말이지만 올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계절이 바뀌지 않았던 집 안에서도 매 순간 아이가 꽃을 피우고 있는지도 옆에서 모르고 말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끊임없이 작은 아이의 꽃이 피는 경이로운 순간순간을 마음으로, 눈으로, 작은 휴대폰 카메라로 가득가득 담고 싶다.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