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양면
회사를 다닐 적에는 금요일 오전만 되면 콩닥콩닥 뛰는 마음이 있었다. 출산과 육아휴직으로 바깥에는 거의 나가지 않고 생활한 지 반년이 되었다. 오늘이 일요일인지 월요일인지 남편의 출근 유무만 없었다면 요일 개념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동시에 요일별로 오는 스트레스와 기쁨도 함께 사라졌다.
잊고 있었는데 나는 고기구이를 좋아했었다. 고기 주문을 마치고 살얼음이 살짝 낀 소주 뚜껑을 돌려따면서 불판이 달아오르기를 기다리는 그 설렘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 일주일에 5번 이상은 이런저런 화로에 앉아 이런저런 고기를 먹다 보니 무엇을 먹어도 고기구이를 먹는 즐거움은 잊고 일상이 되어 살았던 것 같다. 그 일상은 출산 전까지 이어졌다.
갓난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서부터는 외식이 당연히 어려워졌다. 그렇게 고기구이를 마음에 품고 산지 6개월이 되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새로운 육아템을 직접 보고 사기 위해 과감히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수원으로 갔다. 볼 일을 마치고 설레는 정오의 점심시간이 되었다. 바깥 기온은 40도가 찍혔다. 냉면을 먹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우리는 냉면에 고기까지 먹을 수 있는 수원왕갈비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갈빗집 노지에 주차를 하고 콘크리트 바닥에 발을 내디뎠을 때, 까만 바닥이 올라오는 것 같았고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더위를 넘어선 숨 막히는 열기였다. 이 열기를 뚫고 가면 숯불을 마주하겠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에어컨의 시원함이 바깥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그렇지. 쪄 죽이진 않겠지.'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 메뉴를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닐까 고민했던 것이 무색해졌다. 당연한 것까지 걱정했다니 오랜만에 바깥나들이가 사람을 촌스럽게 만들었다. 우리는 갈비를 시켰다. 숯불이 들어오고 빨간 고기가 나왔을 때 우리는 첫 데이트를 하러 가는 것과 같이 설레었다. 철판이 달궈지고 고기를 숯불에 조심스럽고 얌전하게 눕혔다. 고기는 불에 닿자마자 소리를 내었다. '치히 히히힉-' (나는 이제 구워집니다.~) 앞으로 뒤로 몇 번 눕혔다가 가위로 듬성듬성, 싹둑싹둑 잘랐다. 입을 너무 크게 벌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크기로 잘라진 고기를 몇 번 더 불 위에 올려두면 거의 (입으로) 출격준비 완료이다. 붉은 기는 없어지고 갈색의 윤기 좌르르 한 고기가 내 앞 접시에 놓였다. 곁들임 반찬이 많았지만 역시 첫 입은 고기 본연의 맛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고다. 혀끝에 올려놓았을 때, 달고 짠맛이 엉켜 감칠맛으로 들어왔다가 씹을수록 부드러운 육향과 불향이 고소하게 올라왔다. 탄성과 함께 얼굴의 미소가 번진다. '그래. 나는 고기구이를 좋아했었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즐거움만 있으면 즐거움을 모른다. 유희를 끌어올려 즐기려면 적당한 노동(인내)도 필요하다. 당연히 어떤 사람은 주말의 기쁨은 없어도 되니 그냥 매일 놀고 싶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극강의 기쁨은 항상 그 반대의 대가가 있다는 것이다. 일이 그렇고, 결혼이 그렇고, 아이가 그렇고, 고기가 그렇다. 돌아와서 다시 고기 이야기를 하자면 마포에 살면서 마포에 일대에 있는 온갖 고깃집은 다 찍고 다녔는데 고기의 맛을 그저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 맛이 억제되니 너무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아드레날린이 퍼지며 침이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