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매일 아침을 맞을 수 있다면....
오랜만에 잘 잤다. 정말 푹 잤다. 서울에서 찌든 내 몸은 오랜 시간 공기청정기가 걸러준 공기에 의지하여 잠을 청해왔는데, 오랜만에 푸근한 할머니 집에서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공기 좋은 곳에서는 3시간만 자도 몸이 개운하다. 아침 산책 겸 마을 한 바퀴를 휘 둘러보았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브런치를 먹으러 수수 농부네로 향했다. 이상협 수수 농부가 집 앞에서 와플을 굽고 있었다. 시골 마을에서 와플 브런치라니! 와플 향기에 커피 생각이 절로 났다.
이상협, 도수경 부부는 붉으실 마을로 귀농하여 수수 농사를 짓고 있다. 부부의 집은 최신 젊은 부부들의 귀농 트렌드를 반영한 힐링하우스였다. 이런 편리함과 쾌적함이 있다면 누구라도 시골 생활을 즐길 수 있겠다 싶었다. 처음으로 귀농한 사람의 삶이 부러워졌다.
브런치 메뉴 1. 수수풀떼기죽
마른 대추가 올라와 있는 수수죽. 추운 겨울날 아침 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쌀이 귀했을 시절에 수수와 다양한 잡곡을 넣어 죽으로 만들어 먹었다는 풀떼기죽. 죽보다는 조금 걸쭉했다. 수수의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 찼다. 붉으실 마을에서는 어렸을 적 외할머니 집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옛 기억을 떠올리는 맛이다.
브런치 메뉴 2. 수수 와플과 핸드드립 커피
수수풀떼기 죽으로 외할머니 생각에 잠시 울컥했던 마음도 잠시. 나영미 선생님 (마을활동가, 주민모임 '마실' 궁리단 위원) 이 핸드드립 커피를 직접 내려 건네주신다. 그리고 본격적인 붉으실 브런치가 시작되었다.
수수 와플이다.
마을에서 생산된 수수. 수수 농부의 집에서 수수 와플을 먹는다. 찰수수와 찹쌀, 통밀을 섞어 만든 와플은 너무나 쫀득하고 찰지다. 떡과 핫케이크 식감의 중간쯤의 행복한 맛이다. 여기에 취향마다 골라먹는 토핑 삼총사가 대기 중이다.
브런치 메뉴 3 : 마을 주민들이 생산한 과일과 잼과 조청 그리고 콩크림
마을 주민이 직접 만든 오디잼과 사과잼과 사과 조청 그리고 마을에서 생산된 과일까지. 혹시나 모를 반찬. 김치까지. 준비된 붉으실 마을 브런치.
수수를 활용한 최신상 브런치. 수수 와플. 내가 선택한 와플 토핑은 오디잼과 콩크림이었다. 나는 이것을 우리 가족에서 꼭 먹여보고 싶었다. 오디잼과 콩크림은 아직 팔지 않아 살 수 없었지만, 핫케이크/와플용 수수가루는 주민모임센터 '마실'에서 구매하였다.
나는 끝내 와플 2장과 반건시 2개를 먹고 핸드드립 커피를 연달아 2잔을 마시며 2-2-2의 행복한 브런치를 경험했다. 그리고 아침 산책 (트레킹)을 하기 위해 마을 앞산을 올랐다. 그 산이 월악산 자락인 줄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렇게 꼭대기에 위치한 사과밭에 도착했다.
사과농부 김영수 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김영수 씨는 사과농부이기 이전에 아프리카 정치사를 오랫동안 연구한 교수님이었고, 마을 주민과 함께 남제천 마을신문 <봉화재 사람들>을 창간하여 마을공동체 살리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활동가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곳이 그의 고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12년 전, 지인도 없는 산골 마을로 내려와 마을 사람들과의 공동체를 만들어 마을 신문까지 창간한 그의 노력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그의 사과밭에서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느껴졌다. 산꼭대기에 아무것도 없던 땅을 맨몸으로 일궈 사과 농장을 조성했고, 10년째 무농약으로 사과농사를 짓고 있다. 그동안 억지로 사과 수확량을 늘리지도 않았고, 사과나무에 열리는 사과의 양이 적어도 자연이 주는 양에 만족했다. 하지만 몸은 고행처럼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겨우내 먹거리가 부족할 새에게 줄 사과도 충분히 나무에 남겨놓았고, 밭 한켠에 잘 자란 돼지감자는 산멧돼지의 몫이다. 혹시나 그의 밭에 지렁이를 밟을까 싶어 까치발로 밭을 걸었다.
월악산 자락에 위치한 산꼭대기에 봄,여름, 가을을 그대로 머금은 사과다. 자연이 허락한 사과를 한입 베어 무니 아삭함과 상큼함이 입에 가득찬다. 이렇게 소중한 마음으로 사과 한 알을 알뜰하게 먹어본 적이 있었나.
김영수 사과농부의 아내이자 마을너머 여행사의 대표 박영란 씨가 나섰다. 박영란 씨는 처음부터 이번 제천 붉으실 마을 여행을 이끌어왔다. 각 파트를 진행하는 고령자의 마을 주민들을 다독이며 마을 여행을 세심하게 메꿔주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첫날 전망대 트레킹을 이끌면서 뛰어난 호스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편안한 목소리와 그녀만의 특유한 친근감으로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고, 게스트의 참여를 이끌었다. 그녀 덕분에 그날 처음 만난 게스트들이 어색함을 깨고 대화를 나누고 즐겁게 어울릴 수 있었다.
팬더믹 이후, 지역에서는 국내 관광객을 끌어들일 특별한 여행 콘텐츠를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지자체 예산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여 간판과 시설을 새로 고치고, 새로운 현대식 관광지를 개발하여 여행상품을 내놓는다.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지역 주민에게 어떤 물질적, 정서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을까? 붉으실 마을의 이런 소소하고 마을만의 특별한 콘텐츠가 마을여행사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무게감이 있다. 그녀의 찬찬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 몸을 천천히 움직여 깨워보았다. 잠자고 있던 정신도 깨어난 기분이었다.
붉으실 마을에서의 1박 2일은 완벽한 아침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아침이다. 떠나고 싶지 않았던 붉으실 마을. 그리고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을 사람들. 나의 일상이었으면 하는 비일상의 하루가 마무리 되고 있었다.
[참고] 남제천 사람들 신문
[참고] 김영수님의 저서로는 <남아공의 변역 운동과 노동조합,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화해는 용서보다 기억을 요구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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