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5
HOT가 나왔을 때, 아이돌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고 사생 팬클럽의 탄생이 시작된 해였다.
1985년생들은 아이돌 1세대의 일명 ‘소녀팬’도 되어 보고, 삐삐와 핸드폰을 동시에 쓴 세대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삐삐를 써보지 못했고, 삐삐가 있는 친구를 통해 ‘1004’ ‘8282’를 대신 치고,
“어 그거 보낸 사람 나야.” 하면서 통화를 해본 경험만 있다.
핸드폰도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에 사촌 오빠와 함께 강변 테크노마트에 처음 샀었다.
내 첫 2D 핸드폰은 LG에서 나온 CYON이었다. 하얗고 작은 폴더폰이었다.
서울에 나온 김에 <엽기적인 그녀>를 사촌 오빠와 봤다. 급하게 예매를 해서,
우리는 맨 앞줄에서 영화를 봤는데, 전지현이 너무 예뻤지만 목이 아팠고,
내 작고 소중한 핸드폰을 얼른 보고 싶어서 영화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나중에 DVD로 한 번 더 보고 울었다는 후기)
아무튼 다시 아이돌 이야기로 돌아가서,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는 반 아이들은 이렇게 나뉘어 있었다.
한 반에 50명 가까이 되었는데, 약 30명은 HOT 팬, 10명은 젝스키스 팬,
나머지 7명은 신승훈이나 이지훈, 서태지 등이 있었다.
나머지 3명은 그들만의 아이돌인 만화 ‘덕후’였다. 거의 HOT 팬인 애들이 젝키 팬인 소수의
아이들과 싸우는 걸 보면서, 나라도 젝키 편을 들고 싶다는 생각에 굳이 따지자면
젝키 팬이라고 편을 들었다.
HOT팬 아이들은 SES도 부록처럼 좋아했는데, 나 역시 핑클이 더 좋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애들처럼 콘서트를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 밤새고 이런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나는 다른 연예인을 좋아했다.
지금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지만, 내 첫 연예인이자 마지막 연예인은 유승준이었다.
‘열정’ 가득한 그의 무대를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평소의 건실한 이미지는
멋진 남자로 보였다. 아마 전 국민이 그랬기 때문에 그가 병역 문제를 일으켰을 때 배신감이 더 컸을 것이다.
지금이야 언급하면 안 되는 사람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는 무대 위에서 언제나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했고,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 입지가 높던 인기 솔로 가수였다.
나는 유승준의 생방송이나 광고를 녹화하기 위해 시간 맞춰 텔레비전 앞에 섰고,
유승준의 라디오 일정이 있는 날이면 공테이프로 녹음하기 바빴다.
공개 무대나 콘서트를 가본 적은 없지만 그의 음반, 포스터, 사진, 책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았다.
그리고 만화책을 좋아하고 덕후 기질이 있던 나는 같은 덕후 아이들과도 만화를 그린
노트를 공유하며 지내기도 했다.
사실 당시 여자아이들에게 놀 거리는 아이돌 문화였고, 가요였고, 만화였다.
남자아이들은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나온 시기라 PC방, 채팅, 오락실이 거의 전부였달까.
우리 동네 아이들은 시간이 남아돌았기 때문에 골고루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보다 노는 시간에 더 열중이었으니까.
그래서 편을 나누는 것은 의미 없었다. 아이들은 HOT 노래도 듣고, 젝키 노래도 듣고,
유승준 노래도 듣고, 김현정 노래도 듣고, 서태지 노래도 들었다.
마이마이에서 테이프가 늘어나고, CD 플레이어에서 가끔은 뻑이 나도,
우리는 참 많이도 음악을 들었다.
일하느라 바쁜 요즘 같은 날이면, 그때처럼 애들이랑 수다도 떨고,
만화방도 가고, 같이 가요를 부르며 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