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식은 맛이 아니라 기억 때문에 먹지 못합니다.
입맛은 때때로 마음의 반응입니다.
누군가는 “왜 안 먹어요?”라고 묻지만,
그 물음 속에는 닿지 못한 감정 하나쯤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수필은 제가 ‘먹지 않는 것들’을 통해
떠올린 기억, 감정, 그리고 관계의 조각들을 모은 글입니다.
음식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마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의 식탁에 앉아
나도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내가 먹지 않는 것들 — 마음의 식탁 ②
나는 먹지 않는 음식이 있다. 카레, 추어탕, 그리고 양고기. 누군가에게는 그저 흔한 메뉴일지 몰라도, 나에겐 마음 깊숙한 곳을 자극하는 맛이다.
양고기는 냄새가 먼저 거부감을 준다. 언제였더라 지인이 맛집이라며 데려간 곳이 양꼬치집이었다. 그곳에서 처음 접했을 때, 구워지는 냄새가 코를 찌르며 '양 특유의 냄새'란 말을 실감케 했다. 젓가락을 들지 못한 채 물만 마셨고, 그 이후로는 다시 시도할 수 없었다.
추어탕은 상황이 좀 다르다. 어릴 적 장터에서 미꾸라지를 직접 본 적은 없다. 그런데도 끓는 냄비 안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릴 것만 같아 수저를 들지 못한다. 사람들은 "다 갈아서 안 보여"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보이지 않아도 보인다. 혐오감이 입보다 마음을 먼저 타고 올라온다.
그리고 카레. 이건 조금 더 깊은 이야기다. 카레를 먹지 않는 이유는, 냄새 때문도, 향신료 때문도 아니다. 그건 동생과의 쓰라린 이별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그날 동생은 병실에서 카레를 한술 뜨고 말이 없었다. 마지막 말조차 남기지 못한 채 각자의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 뒤로 카레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히고, 무언가 먹먹한 감정이 함께 올라온다.
나는 그저 "안 맞아요"라고 말한다. 설명할 수 없는 기억과 감정이지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그런 음식이 하나쯤은 있으니까.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이런 감정과 기억을 이렇게 오래 안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이 음식을 거부할 땐 얼마나 마음을 헤아렸을까? 예전에 회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진짜 맛있는 집이 있다"며 데려간 적이 있다. 그 사람이 젓가락만 만지작거리며 어색하게 웃던 얼굴이 뒤늦게 떠오른다.
나는 입맛을 권한 게 아니라, 감정을 밀어붙였던 것이다. 먹지 않는다는 건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그건 기억이고, 감정이며, 때로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조용한 저항이다.
무언가를 거부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떤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카레를 먹지 않고, 추어탕을 마주하지 않으며, 양고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만의 고집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식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나는 참 고마울 것 같다.
“괜찮아. 안 먹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