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식탁 1화 그냥, 안 맞아요

그 냄새 그날의 기억

by 빡작가

입맛은 때때로 마음의 반응입니다.
누군가는 “왜 안 먹어요?”라고 묻지만,
그 물음 속에는 닿지 못한 감정 하나쯤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수필은 제가 ‘먹지 않는 것들’을 통해
떠올린 기억, 감정, 그리고 관계의 조각들을 모은 글입니다.
음식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마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의 식탁에 앉아
나도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그냥, 안 맞아요.

박현주

가족이나 지인들과 모임이 있을 때면 메뉴 선택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누군가 “닭갈비 어때?”하면, 다른 누군가가 곧 말한다. “현주가 닭 안 먹잖아.” 그 한마디에 대화는 슬그머니 방향을 튼다.

닭이나 오리 대신 우리는 소고깃집이나 삼겹살집으로 간다. 조금 더 비싸지만, 모두 웃으며 자리를 잡는다. 나는 함께 앉아 웃기도 하고 젓가락질도 하지만, 마음 한켠엔 작고 묵직한 미안함이 스며 있다.

내가 싫어한다고, 모두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그건 분명 고마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어딘가 불편하다. 억지로 먹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다른 이들의 입맛까지 바꿔야 하는 건 아닐 텐데.

닭을 안 먹게 된 건 오래전부터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닭꼬치 냄새가 불쾌했고 삶은 달걀의 노른자를 먹으면 하루 종일 닭똥 냄새가 맴도는 것 같았다. 그건 단순한 입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감정이 거부하고 있었고, 기억이 입맛을 이끌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엔 칠면조가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큰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올해도 잡아야지.” 며칠 전까지 마당을 뛰놀던 생명은 어느 날 사라지고, 식탁 위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가족들은 익숙하게 먹었고, 나는 그저 조용히 물만 마셨다. 그건 음식이 아니라, 내가 아는 존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기억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누군가 “왜 닭을 안 먹어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그냥, 안 맞아요.” 말을 아낀다. 그 기억을 꺼내는 것도 쉽지 않고, 설명한들 다 이해받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없으니까.

나는 회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엔, 회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횟집에 가자고 했다. 그 사람이 먹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고 쉽게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건 실례였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 회를 먹지 않는 지인을 만나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그냥 ‘안 먹는구나’ 하고 넘어갔다. 서로 묻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어쩌면 마음을 지켜주기 위한 예의였을까, 아니면 감정을 외면하는 습관이었을까.

음식을 통해 나를 드러내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냥 싫다, 안 맞는다고 말하긴 쉬워도, 그 안에 있는 감정을 꺼내는 건 쉽지 않다. 먹지 않는다는 건, 말하지 못한 감정 하나쯤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이해하고, 누군가는 묻지 않아 주는 방식으로 함께해준다.

이제 나는 조금씩 다르게 바라본다. 누군가가 어떤 음식을 거절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말을 듣고자 한다. 그게 말로 표현되든, 침묵 속에 숨겨져 있든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안 맞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걸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마음이 식탁에 함께 놓일 때 비로소 그 자리가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냥, 안 맞아요.”

이 말 안에는 나도 몰랐던 나의 조각이 숨어 있고, 이해해준 시간이 조용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