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손길
나는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입맛은 제법 까다로운 편인데, 손맛은 어머니를 닮지 못했다. 어머니는 요리를 사랑했고 요리로 사람을 대접하셨다. 그분이 차려준 밥상에는 음식 이상의 것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소갈비찜을 유난히 잘하셨다. 음식점보다 맛있다고들 했고, 나는 그 말에 전혀 이견이 없었다. 달큼하면서도 깊은 맛, 살이 부드럽게 떨어져 나가는 그 갈비찜은 누구에게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자랑이었다.
아버지 생신날이면, 회사의 직원들 내 기억에 50명은 넘었던 것 같다 그들을 모두 초대했다. 어머니는 전날 밤부터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새벽같이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의 밥상을 감당해 내셨다.
놀라운 것은 임원들보다 공장에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더 넉넉히 퍼주셨다.
“오느라 배고팠지? 이리 와서 얼른 먹어. 일하는 사람들이 더 힘들지” 하셨다.
그날이면 새벽부터 어머니의 부엌은 분주했다. 수십 명 분의 소갈비를 재우고, 전을 부치고, 잡채를 무쳤다. 김치와 나물도 손수 다듬었다. 그리고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셨다.
요리는 어머니에게 ‘솜씨’가 아니라 ‘마음의 표현’이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 그리고 사람들, 그 모두를 잇는 건 늘 어머니의 밥상이었다.
어머니는 요리를 통해 사람을 기억했고, 그 기억을 음식으로 돌려주는 분이었다. 예전엔 결혼식도 집에서 음식을 준비했다. 마을에서 누가 결혼을 하면, "아주머니, 이번에도 음식 좀 해주세요" 하며 어머니를 먼저 떠올리곤 했다. 그건 요리 잘하는 사람으로서의 인정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마음이 따뜻하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나는 음식 냄새로 하루가 시작되었고, 어머니의 뒷모습을 따라다니며 맛보기를 졸랐다. 그 시절의 나는 음식을 먹었다기보다 정성을 받아먹었다. 지금은 그 식탁이 없다. 하지만 마음속엔 여전히 어머니의 밥상이 놓여 있다.
내가 무엇을 먹지 않게 된 것도, 무엇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 밥상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고기를 재우는 손길 속엔 어머니의 인생이 있었다. 그 손맛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한 세대의 정서와 사랑, 배려의 방식이었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소갈비찜이 그립다. 그 맛을 다시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마음을 저리게 한다. 그러나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또 한편으로는 나를 따뜻하게 만든다.
어머니는 밥상을 통해 사람을 안아주던 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품속에서 자라났다.
빡작가(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