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으로 기억을 말한다
기억은 혀끝에 남는다
– 입맛으로 기억을 말하다
학창 시절, 학교 앞 분식집은 작은 천국이었다.
떡볶이, 튀김, 김밥. 그때는 돌을 씹어 먹어도 맛있을 나이였다.
떡볶이는 어찌나 맵고도 달콤했던지, 고구마튀김은 눅눅하게 양념에 젖어 있어야 제맛이었다.
길거리에서 선 채로 먹던 그 음식들, 지금 생각해도 입에 군침이 돈다.
세월이 흘러, 아이를 가진 어느 날, 문득 그 분식집 떡볶이와 튀김이 그리워졌다.
발걸음을 옛 골목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이미 헐려 낯선 상가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냄새도, 온기도, 사람도 모두 사라진 자리.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맛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살아 있었다.
신혼여행을 부산으로 갔을 때였다. 남편 친구 어머니가 유명한 요리사셨다. 그분은 호텔도 잡아주시고,
우리에게 손수 따뜻한 집밥을 차려주셨다.
정작 신혼인데 친구들과 함께 붙어 다녀 단체 여행인지 신혼여행인지 헷갈릴 정도였지만,
그중에서도 복지리 한 그릇의 맛은 지금까지도 또렷하다.
맑고 깊은 국물에 흰 속살이 살살 흩어지던 복지리. 간장도 필요 없었다. 입안에서 바다의 향이 피어오르고,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여러 복국집을 찾아봤지만 그때 그 맛은 다시 오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식당에서조차도. 맛이란, 입이 아니라 마음이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맛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해진다. 그리고 결국, 글이 된다.
아버지 고향은 함경도였다. 어린 시절, 우리는 동네 냉면집에서 함흥냉면을 자주 먹었다. 입에 불이 나도록 매운 양념에도 아버지는 묵묵히 젓가락질하셨다. “이 맛이 진짜 맛이지.” 그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그리고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여 만두를 빚었다. 어머니는 고기와 채소를 손질하고, 우리는 둥그렇게 둘러앉아 만두피에 소를 얹고, 서로의 모양을 구경했다.
"너 건 다 터졌어!"
"그래도 맛은 있어!"
찜기에서 올라오는 김 속에 웃음소리가 피어났다.
그 만두 맛은 다시 올 수 없지만, 그날의 온기와 웃음은 아직도 내 안에 있다.
혀끝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그리고 생각한다. 말도 맛이 있다. 따뜻한 말은 달콤하고, 무심한 말은 씁쓸하다.
어떤 말은 입안에 오래 머물고, 어떤 말은 들으면서도 이미 뱉고 싶어진다. 사람이 만든 음식도, 사람이 만든 말도, 그 순간은 지나가지만, 혀끝에는 남는다.
맛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인생의 조각이 되고, 그 조각은 문득문득 말의 여운처럼 다시 떠오른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곱씹는다. 그 말에도 맛이 있으니까.
기억처럼, 인생처럼. 기억은 결국, 혀끝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