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양념이 필요하다
맛있는 말, 싫은 말
– 말에도 양념이 필요하다.
말에도 맛이 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몸을 살찌운다면, 귀로 들어오는 말은 마음을 움직인다.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고, 또 어떤 말은 종일 가시처럼 박힌다.
성지 순례를 열흘 동안 함께했던 나는 ‘맛있는 말’을 쓰는 사람을 보았다. 성모회 회장인 그 여인은 누구에게나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거스르지 않고, 조용하며 온유한 말투로 할 말을 다 하면서도 듣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웠다.
그녀의 말에는 약간의 소금이 들어 있었다. 심심하지 않게, 그러나 짜지도 않게. 다정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해보면 더 좋겠어요.’
그 한마디는 마치 오래 양념에 잘 재운 음식처럼, 기분 좋게 스며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맛있는 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춧가루 팍팍 넣은 듯, 듣는 이를 매운 기운으로 얼얼하게 만드는 말도 있다. 가족을 건드리는 말은 특히 조심스럽다. 누군가의 자녀를 상대로 하는 말은 마음을 베는 날이 되기도 한다.
말끝마다 토를 달고, 칭찬보다 지적이 앞서는 사람과 마주할 때면 밥맛도, 말맛도 함께 사라진다. 그건 아무리 반찬이 맛있어도 함께 밥을 먹기 어려운 이유다.
반대로, 내 남편은 식단에 대해 투정하지 않는다. 몇 가지 반찬만 올려도 ‘수고했어’, ‘고마워’ 짧지만 따뜻한 말을 해준다. 나는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그 말에 ‘더 잘해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지인의 남편은 퇴직 후 매 끼니가 새 밥과 반찬을 원한다. 세 끼를 챙겨야 하고, 외식은 싫다고 한다. 떡도, 약밥도, 먹고 싶다고 하면 ‘집에서 직접’ 해달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는 하긴 하지만 사랑이 아니라 ‘의무’만 담겨 있다. 그녀는 지쳐 있다.
말은 조미료와 같다. 같은 음식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지금 나는 누군가에게 짠 말 대신, 따뜻한 국물 같은 말을 건네고 싶다. 말은 혀끝에서 나오지만, 마음 끝에 머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이 말은 맛있을까, 싫을까. 누군가의 하루를 짜게 만들진 않을까. 혹은,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말도 음식처럼 정성껏 준비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