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빛
여름의 뜨거움이 가시고, 어느덧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 뜨거운 사우나가 덥다고 투덜거렸던 내가 이제는 진짜 따뜻함이 어디서 오는지 알게 되었다. 내 딸이 공연을 떠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세 개의 빛이 내 삶의 공간을 가득 채우며 세상 어떤 따뜻함보다 깊고 포근한 위로를 건넨다. 나의 외손주들이 바로 그 빛이다.
첫째는 열한 살이 된 손녀이다. 사려 깊고 의젓하여 마치 작은 어른과 같다. 가끔은 내가 사는 세상의 고민까지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말이 잘 통한다. 때로는 내 묵은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서 듬직한 동반자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애의 존재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묵묵히 안내하는 등대와 같다.
둘째는 깨지고, 부러지고,… 하루도 성할 날이 없는 사고뭉치다. 얼마 전에는 집에서 축구를 하다 발가락 골절을 입었고,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 착지를 잘 못 하는 바람에 넘어져 무릎이 찢어져 열 바늘도 넘게 꿰매는 일을 겪었다. 걱정이 태산 같지만, 그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세상 모든 것을 온몸으로 탐험하려는 듯한 아이의 눈빛에서는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아찔한 순간마다 내 심장을 철렁이게 하지만, 그 아이의 대담함과 용기는 틀에 박힌 일상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다. 어쩌면 그 아이는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히며 가장 진실한 것을 배워가는 작은 모험가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막내 손녀는 그야말로 종달새이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작은 입을 쉬지 않고 쫑알쫑알. 온종일 이야기를 쏟아낸다.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혼자 먹지 않는 아이이다. 특히 할머니인 나에게는 말 그대로 ‘껌딱지’이다. 내가 집에 가면 졸졸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잠도 꼭 같이 자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저와만 이야기하라며 보채는 모습은 어찌나 귀여운지. 유치원 공개 수업 때 엄마 대신 할머니가 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는 정말이지 마음이 뭉클했다. 이런 사랑스러운 막내를 보고 어찌 예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과 끊임없는 재잘거림은 내 모든 시름을 잊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을 지녔다.
이렇듯 개성 강한 외손주들은 내 삶에 다채로운 색깔을 입혀준다. 의젓함과 대담함, 그리고 사랑스러움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어떤 훌륭한 공연보다도 감동적이다. 사우나의 뜨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따뜻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아이들이야말로 내 삶의 진정한 의미이자, 나를 '찬란하게' 살아가게 하는 이유이다.
세 개의 빛이 비치는 한, 내 삶은 언제나 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