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함께였기에 몰랐던 나만의 시간
나는 혼자 있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어릴 적부터 늘 누군가와 함께였다. 부대끼고, 살을 부치며 살아왔다.
고향이 함경도 원산인 아버지는 1·4 후퇴 때 월남하셨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친척이 거의 없었다. 명절이면, 다른 집들은 북적였다. 오고 가는 친척들, 음식 냄새,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우리 집엔 없었다.
우리는 조용한 거실에 앉아 TV에서 해주는 무협 영화를 보며 명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묵묵히 화면을 바라보셨고 어머니는 그 곁에 조용히 앉아 계셨다. 그 고요한 풍경 속에서, 나는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다. 함께 웃고, 함께 식사하고, 같이 설거지를 나누는 그런 풍경이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결혼을 식구 많은 집으로 했다. 사람이 많고, 시끌벅적하고, 명절마다 모이고 나누는 그런 이었다. 외로움 없는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낳고, 결혼하고 손주들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누구의 딸,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
그리고 선생님, 강사… 이름보다 관계로 불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혼자’라는 단어는 나와는 거리가 먼 낯선 단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독립하고, 수업이 끝나고, 문을 닫고 돌아서는 집 안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다. TV 소리 없이 울리는 정적이 마치 예전 명절처럼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고요함이 다르게 들렸다. 나를 위한 시간, 나를 위한 공간, 나를 위한 여백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조금씩 소중해지고 있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오카리나를 연주하고,
글을 쓴다. 누군가를 돌보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조용한 사색의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어린 날의 외로움도, 늘 누군가와 함께하려 애썼던 마음도 조용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본다. “혼자 있는 시간도 괜찮아. 그 시간 속에 진짜 내가 있어.”
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