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하나의 여백 3화
멈춤이 준 선물

죽음 같았던 멈춤, 그러나 그곳에서 다시 살아났다

by 빡작가

멈춤이 준 선물

(죽음 같았던 멈춤, 그러나 그곳에서 다시 살아났다)


나는 멈춤을 죽음이라 생각했다. 멈춘다는 건 모든 것이 정지되는 거니까. 그러니 어떻게든 멈춰서는 안 됐다. 쉬지 않고 몸을 혹사시키고, 또 혹사시켰다. 죽으면 흙이 될 텐데, 무엇 때문에 아껴야 하나 싶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는데 내가 뭐라고 편히 쉬어야 하나. 그렇게, 쉼 없는 순례를 살아냈다.

그러다 결국, 멈출 수밖에 없는 벼랑 앞에 섰다. 극심한 피로가 쌓이고 쌓이다 암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처음엔 그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몸만 아픈 게 아니라, 마음까지 무너져 내렸다. 어쩌면 죽음이 이쯤에서 나를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매일같이 문을 두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중환자실 침대 위에서 더는 몸도 마음도 움직일 수 없던 순간, 비로소 '멈춤'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억지로 도망쳤던 바로 그 단어가 나를 살려냈다.

손자병법에도 '일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한'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후퇴 같은 시간’이 사실은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멈추고 나서야, 나는 나 자신과 마주했다. 멈추고 나서야, 주님의 손길이 얼마나 깊고 따뜻했는지를 느꼈다. 멈춤이 준 가장 큰 선물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직 나에게 ‘해야 할 삶’이 남아 있다는 자각이었다.

이제는 쉬는 법을 배우고 있다. 혼자만의 사색, 조용한 음악, 느릿한 기도, 햇살을 들이마시는 일조차 하나의 기도처럼 느껴진다.

다시 뛰기 위해 잠시 멈춰 선 중이다. 그리고 이 멈춤은, 내가 다시 살아가도록 허락된 두 번째 삶의 시작이다.